[시그널] 벌써 21개社 신용등급 전망 상향…기업, 코로나 리스크 벗어난다


국내 기업들의 신용도에 청신호가 켜졌다. 신용도가 올라가면 금리는 낮아지고 더 많은 금액을 시장에서 조달할 수 있어 일부 기업들의 자금 기근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조달한 자금은 기업의 투자·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만큼 경제 전반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국내 기업 21곳의 신용 등급 전망이 상향 조정됐다. 향후 6개월~1년간 회사의 실적과 재무구조가 꾸준히 개선될 경우 신용도가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신용 등급이 떨어질 것이라는 하향 전망은 8곳으로 지난해 44곳보다 크게 줄었다.


유건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장은 “항공이나 호텔 등 아직까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섹터를 제외하고 실적이 개선된 곳들이 많아 긍정적인 조정이 이어지는 추세”라며 “불확실성이 걷히면서 과거 하향 우위 기조에서 상향 조정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적 전망도 좋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를 제공하는 128개 상장사 중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은 16.4%(21곳)에 불과했다. 항공과 호텔 등 코로나19의 여파에서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일부 섹터를 제외한 대다수 기업들이 지난해보다 개선된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적정 주가 데이터를 제공하는 266개 기업들 가운데 목표 주가가 상향 조정된 곳도 69.54%(185곳)에 달했다. 기업 10곳 중 7곳 수준이다.







BBB등급도 잇따라 완판…회사채 시장 회복세 완연


올 A 이하 경쟁률 6대1로 작년 3배


동부건설·두산 등 줄줄이 조달 성공


재무개선→신용등급 상향 선순환


운용사들 낮은금리로 앞다퉈 매수




기업 신용등급 BBB인 동부건설은 지난 4월 7년 만에 회사채 시장을 찾았다. 공모채 발행을 시작한 후 수요예측에서 한 번도 투자 수요를 채운 적이 없었지만 올해는 모집액(500억 원)의 두 배가 넘는 1,160억 원이 몰렸다. 동부건설은 7년 만에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지난해 구조조정의 복판에 서 있던 두산(BBB)은 두 차례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대규모 물량의 미매각 아픔을 겪었다. 그랬던 두산에도 지난달 400억 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에 2,000억 원이 넘는 매수 주문이 쏟아졌다. 발행 물량을 800억 원으로 늘렸고 금리도 크게 낮췄다. 낮은 금리로 차환하면서 두산은 연 10억 원 가까운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이 하나둘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면서 ‘재무 개선→신용등급 전망 상향→활발한 자금 조달’의 선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낮은 신용도의 기업들도 자금 조달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는 것이다.


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연초 이후 회사채 시장에서 A등급 이하 채권 경쟁률은 평균 6.04 대 1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3 대 1 대비 크게 높아졌다. 반면 우량 등급으로 분류되는 AA등급의 경우 3.94 대 1로 전년 동기 3.06 대 1과 큰 차이가 없다.


신용평가사들의 상반기 정기 평가는 주로 지난해 재무지표와 1분기 실적을 고려해 이뤄진다. 신용등급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은 기업들의 펀더멘털이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 점차 회복하는 추세로 들어섰다는 얘기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소비 심리가 풀리면서 경기에 민감한 건설사들이나 실적이 회복된 저신용 기업들을 중심으로 등급 상향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코로나19 여파로 등급이 떨어진 회사채나 비우량 채권에 대한 매수세가 늘어나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회사채의 신용등급이 오르면 금리가 낮아지면서 샀던 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매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모주 시장의 열기가 지속되면서 저신용 회사채를 담으려는 자산운용사들의 수요도 여전하다. 추후 가격 하락에 대한 부담이 적어지면서 기업들이 제시하는 희망 금리 밴드보다도 낮은 금리로 매수 주문을 넣는 투자자들도 많아졌다.


정부도 저신용 기업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일몰 예정이던 저신용 회사채 매입 기구(SPV)와 신용보증기금의 P-CBO, 채안펀드 등의 운영 기간을 하반기까지 늘리면서 수요예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간 시장 유동성이 풍부했던 만큼 지원 여력도 1조~2조 원 규모로 충분히 남았다는 평가다.


다만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진 점은 부담이다. 채권 금리의 바로미터인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시장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태훈 악사손해보험 연구원은 “A등급 이하 저신용 회사채의 경우 등급이 오를 가능성이 커진 만큼 캐리트레이드(시세 차에 따른 이익 실현) 매력이 높다”면서도 “그러나 하반기 금리 인상과 대규모 추경 등이 예정돼 있는 만큼 국채 금리 변동성이 커져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민경 기자 mkkim@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