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 대상을 소상공인이 주를 이루는 5인 미만 근로자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착수했다. 전체 사업장 평균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이른바 ‘직장 갑질’이 더 심하다는 점에서 제도가 시행되면 직장 문화를 대폭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하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한 사업 구조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난 등을 이유로 제도 도입을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2일 고용부에 따르면 한국노동연구원은 고용부 의뢰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등 근로조건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10월 시작해 이달 말 종료 예정인 이번 연구 용역는 괴롭힘 금지법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전반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게 주요 목적이다. 연구원은 사업장과 근로자의 직장 내 괴롭힘 인식 수준부터 적용 단계, 감독 행정 비용 등 정책 도입에 필요한 제반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
근로 현장에서 직장 갑질을 근절하려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괴롭힘 금지법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고용부에 5인 미만 사업장으로 괴롭힘 금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인권위 권고에 고용부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직장 내 갑질은 괴롭힘 금지법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더 심각하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4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직장 변화에 대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32.5%가 ‘괴롭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괴롭힘을 경험한 비율이 36%로 더 높았다. ‘괴롭힘이 줄지 않았다’는 답변도 5인 미만 사업장이 46.9%로 전체 평균인 43%보다 높았다.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교육을 받은 적 없다’고 답한 근로자도 전체 평균은 53.6%였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78.3%에 달했다.
직장갑질119의 한 관계자는 “상당수 5인 미만 사업장은 괴롭힘 금지법을 모를 정도로 직장 갑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라며 “5인 미만 사업장도 서둘러 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소상공인 업계는 괴롭힘 금지법 도입을 놓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영세성을 감안해 근로기준법에서도 부당 해고 금지, 근로시간 제한 등 기본적인 근로자 권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도 같은 이유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초유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 버겁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괴롭힘 금지법이 적용될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수 있는지도 논란거리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원룸 형태 작업장의 경우 피해자 분리가 쉽지 않아 제도 도입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어서다.
정부 차원에서 680만여 개에 달하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관리·감독 미흡으로 제도가 안착되지 못하면 오히려 사업장별 노사 갈등만 키울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소상공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갑질은 없어져야 하지만 대부분의 소상공인 사업장은 가족적인 문화와 팀워크를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 때문에 어느 선까지가 괴롭힘인지도 잘 모르는 사업장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아직 연구 용역 단계이기 때문에 제도 도입과 관련해서는 정해진 게 없다”면서도 “각계각층의 충분한 의견 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