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각국 정부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개발하지 않을 경우 테크기업에 통화정책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 이어 유럽연합도 CBDC 발행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CBDC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입장이 극명히 갈리고 있다.
2일(현지시간) ECB는 ‘유로화의 국제적 역할’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고, 디지털 화폐를 도입하지 않는 정부에게 경고했다. CBDC 도입에 실패할 경우 향후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자체 통화를 제공할 것이라는 우려다. 2019년 리브라 프로젝트를 공개한 페이스북은 ‘디엠’으로 명칭을 바꿨고, 지난달에는 시범 버전을 곧 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피터 클레페 유럽연합(EU) 정책 분석가는 이 보고서와 관련해 “현재 유럽중앙은행이 빅테크기업으로부터 잠재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디지털 유로화가 개발된다면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이 강화돼 되레 민간 은행의 입지가 위협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클레페는 CBDC에 대한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내놨다. 클레페는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처럼 디지털 유로화도 궁극적으로는 사용자를 추적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는 국가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통화를 만들려는 암호화폐의 근본 정신과 배치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CBDC 상용화 이후, 통화가 실물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민간은행이 위축되면 통화팽창 시 인플레이션이 초래되는 현상이 더 급격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CBDC 발행에 있어 블록체인 기술은 필수가 아니다. 블록체인이 아닌 다른 기술을 활용해 CBDC를 발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에 일각에서는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CBDC는 분산형 블록체인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매체 디크립트는 ECB가 디지털 통화의 핵심 기술로 블록체인을 사용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각국의 CBDC 도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다. 바하마는 지난 해 10월 세계 최초로 CBDC를 출시했고, 그 뒤로는 중국이 CBDC 상용화에 힘을 주고 있다. 2014년부터 선도적으로 중앙은행 CBDC 연구를 시작한 중국 인민은행은 내년 초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와 동시에 디지털위안화(DCEP)를 상용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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