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뜨겁다

문화 향유권 확대·균형발전론 등
다양한 명분 내걸고 20여곳 도전
비수도권 지역은 합종연횡 잇따라
부산 "공모 방식으로 뽑아야" 건의

'이건희 미술관 용인 유치 시민추진위원회'가 경기 용인시청 국제회의실에서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유치 활동에 나섰다. /용인=연합뉴스

세종 지역 30여 개 문화·예술단체로 구성된 '이건희 미술관 유치 세종범시민추진위원회'가 정부세종청사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이건희 미술관의 세종 유치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달 13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건희 미술관의 입지 선정을 위한 공모를 제안하고 있다. /부산=조원진기자

권영진 대구시장이 지난 1일 이건희 미술관의 대구 유치를 위해 경북도청 후적지에 '이건희 헤리티지 센터'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이건희 미술관’ 건립 입지를 놓고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벌써 20여개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밝힌 가운데 전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에서부터 지역균형발전 달성, 문화시설 소외 문제 해소 등 다양한 명분을 내걸고 유치전을 펼치고 있다.


6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서울 용산구, 경기 수원·과천·오산·의정부시와 인천, 부산, 대구, 경북 경주시, 경남 진주시·의령군,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 등 20여곳이 출사표를 내밀었다. 사실상 고(故) 이건희 회장과 연관된 모든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밝힌 셈이다.


이건희 미술관을 둘러싼 유치전이 과열되고 있는 것은 미술관 건립 시 경제적 파급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대구경북연구원은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건립되면 생산유발 효과 7,482억 원, 부가가치유발 효과 3,201억 원, 방문객 생산유발 효과 1,239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자체의 유치 명분도 각양각색이다. 수도권 일부 지자체는 전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를 유치 명문으로 내세우고 있다. 서울 용산구는 접근성이 우수하다는 점과 대를 이어 삼성가(家)가 살아온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경기 과천시는 사통팔달의 교통 인프라를 갖춘 지역이자 전 국민 문화 향유에 대한 접근성이 좋은 청사 유휴부지가 적격이라고 강조한다.


오산시는 수도권 남부 최대 문화관광단지로 조성되는 내삼미동 시유지 3만8,961㎡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수원시는 삼성전자 본사와 삼성가 묘역이 있는 상징성 외에도 이건희 컬렉션 중에 ‘화성성역의궤’와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과 관련한 작품들이 다수 있다는 점을 유치 명분으로 내걸었다.


의정부시는 수도권 접근성과 함께 문화시설 소외론을 들고 나왔다. 의정부시는 6.25 전쟁 이후 70년 간 미군이 주둔해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국가 안보를 이유로 정부 발전계획에서 제외된 탓에 공립미술관도 없는 문화 불모지로 불린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반환이 결정된 주한미군의 캠프잭슨 부지가 예술인마을과 문화예술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도시계획에 반영됐고 서울외곽순환도로, 수도권 전철, 인천·김포공항 등 교통 접근성도 뛰어나다”고 말했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는 지역균형발전론을 근거로 들었다. 대구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미술관이 지방에 건립돼야 한다며 미술관 및 관련 시설을 포함한 건축비 2,500억 원 전액을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또 수도권 문화시설 집중에 반대하는 경남 의령군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출생지이자 이건희 회장이 유년기를 보낸 지역이란 이유로, 진주시는 이 회장의 모교인 옛 지수초등학교가 있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비수도권에서는 합종연횡도 잇따른다. 진주·사천·남해·하동 등 경남 4개 시·군과 여수·순천·광양·고흥·보성 등 전남 5개 시·군 등 9개 시·군으로 구성된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는 이건희 미술관을 남해안남중권 지역에 유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북도는 유치전에 뛰어드는 대신 대구시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반면 경북 경주시는 매년 평균 1,500만명 이상 찾는 국내 대표급 관광지인 점과 신라시대 천년고도이자 민족 예술의 발상지란 점을 내세우며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전국 최초로 유치 의사를 밝힌 부산시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공모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했다. 여러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밝힌 상황에서 공모 없이 입지가 선정된다면 탈락한 지역의 반발 등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기증한 고인과 유족의 뜻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탈락한 지자체가 승복할 수 있도록 공모 절차를 통해 선정하자는 입장이다.


유치 대신 기증품 전시나 귀환 등을 추진하는 지자체도 나왔다. 일찌감치 유치전에 나섰던 울산시는 유치를 포기하고 ‘이건희 컬렉션’의 울산 전시를 요청하는 등 순회 전시에 힘을 쏟고 있다. 전남도는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가운데 전남 출신 한국미술 거장들의 작품 21점을 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받아 전시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인천 강화군은 기증품 중 강화도에서 출토된 고려시대 문화재인 ‘강화귀환’을 돌려달라고 정부에 건의했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전국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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