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기 신도시 투기의혹’으로 논란을 빚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신도시 조사기능을 회수하기로 했다. 이밖에 다른 기능도 타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민간으로 넘겨 전체 조직의 20%(2,000명) 이상을 감축하기로 했다. 다만 혁신의 핵심 방안으로 언급된 LH의 ‘토지-주택-주거복지’ 등 기능에 따른 분리는 추후 검토하겠다며 미뤄 ‘반쪽짜리’ 혁신안에 그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7일 국무총리실·국토교통부·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LH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LH 일부 직원의 3기 신도시 사전투기 의혹이 제기된 뒤 국토부·기재부 등 관계부처와 민간전문가로 구성돼 출범한 ‘LH 혁신TF’가 3개월 간 논의해 확정한 방안이다.
◇신도시 조사권한 국토부로…2,000명 감축=혁신방안은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한 통제장치 구축과 독점적 권한 회수, 조직 기능·인력 슬림화, 전관예우·갑질 등 병폐 차단 등을 위한 구상을 담았다. LH를 현재의 부동산 개발 위주에서 주거복지 서비스 전문기관으로 탈바꿈하는 한편, 2·4대책 등 주택공급 역할은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했다고 밝혔다.
우선 정부는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LH의 ‘개발정보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공공택지 입지조사 업무를 국토부로 회수하도록 했다. 또 다른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민간이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은 과감하게 축소·이양하도록 했다. 주거복지·주택공급 기능을 제외한 비핵심기능을 분산해 조직 슬림화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조치로 전체 20% 수준인 2,000명 이상의 인원을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공택지 입지조사권한 회수에 따라 앞으로 신도시 등 공공택지 입지조사 관련 계획업무는 국토부가 직접 수행하게 된다. LH는 입지선정 이후 보상·부지조성·택지공급 등 후속 실무만 수행하게 된다.
다른 기관과 기능이 중복되는 업무는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도록 했다. 시설물성능인증 업무는 건설기술연구원, 공동주택관리지원 업무는 주택관리협회로 넘기게 된다. LH 기능 수행에 필수적인 정보화 사업을 제외하고 나머지 정보화 사업은 국토정보공사(국토), 한국부동산원(주택)으로 이관한다. 정부간 협력사업(G2G)을 제외한 신규 해외투자사업은 원칙적으로 중단하고, 컨설팅 업무는 해외인프라도시개발공사(KIND)로 넘겨 수행하도록 했다. 이밖에 지역 수요에 맞게 추진될 필요가 있는 도시·지역개발, 경제자유구역사업 등은 지자체로 이양하고, 리츠사업 중 자산 투자·운용 업무(AMC)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나 민간 금융사업자 등을 활용하도록 했다. 또 집단에너지 사업 및 안전영향평가 업무와 같은 LH 본연의 기능과 무관한 업무는 폐지할 계획이다.
이 같은 LH의 기능 조정에 따라 인력도 20% 이상 감축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관리 소홀책임을 물어 상위직(2급 이상) 20% 이상을 감축하는 등 1단계로 1,000명을 감축한다. 이어 1단계 완료 후 정밀진단을 거쳐 지방조직 등에서 약 1,000명을 추가로 감축하기로 했다.
◇전 직원 재산등록…투기 방지 대책 마련=투기 방지 등을 위한 강력한 통제장치도 구축하기로 했다.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전관예우’ 등 고질적 악습 또한 근절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재산등록 대상을 전 직원으로 확대하고, 실사용 목적 외에는 토지취득을 금지하도록 했다. 실수요 목적 외 주택·토지를 처분하지 않으면 고위직 승진에서 배제할 방침이다. 신도시 지정 시 토지소유자 정보와 임직원 토지보유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임직원 보유토지 정보시스템’을 만들고, 이와 대조해 투기 의심 사례를 적발토록 했다. 또 ‘준법감시관제’를 도입해 외부 전문가를 준법감시관으로 선임하고 외부위원 중심의 준법감시위원회도 구성하기로 했다.
전관예우, 갑질행위 등 고질적인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 취업 제한 대상을 임원(7명)에서 고위직 전체(529명)로 확대했다. 퇴직자가 소속된 기업과는 퇴직일로부터 5년 간 수의계약을 할 수 없도록 했다. 또 SNS 등을 통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경우 엄중 문책하기로 했다.
LH의 방만경영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담겼다. 향후 3년간 임원 및 고위직 직원의 인건비를 동결하고, 경영평가 때는 수익성 보다는 사회적 책임, 윤리경영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또 과거 비위행위도 평가결과 수정을 통해 임직원 성과급을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조직 분리는 추후 논의키로=이번 혁신방안에서는 LH 혁신의 핵심 방안으로 언급된 ‘조직 분리’ 방안은 제외됐다. 다만 정부는 추후 심층 논의를 거쳐 토지, 주택, 주거분리 등 핵심기능을 분리하는 조직개편 대안을 마련하고 추후 확정하겠다는 방침을 전했다.
정부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협의를 거쳐 LH의 조직 재설계 방안을 논의했지만, 조직 개편이 주거복지 등 국민의 주거 안정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인 만큼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추가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중점 논의할 대안은 총 3개로, △토지, 주택, 주거복지를 별도 분리 △주거복지 부문과 개발사업 부문인 토지·주택을 동일하게 수평 분리 △주거복지 부문을 모회사로, 개발사업 부문(토지·주택)을 자회사로 두는 안 등이다.
정부는 “3개 안을 포함해 추후 광범위한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고, 법률안을 마련해 정기국회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구체적인 최종안 마련 시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혁신방안을 발표한 노형욱 국토부 장관은 “공정하고 스스로에게 엄정해야 할 공공기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발생하여 참담한 심정으로 공직사회의 깊은 자성과 함께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는 LH사태로 드러난 구조적 문제점을 확실히 해소해 LH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투명한 조직으로 반드시 변화시킨다는 단호한 각오를 갖고 혁신 방안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진동영 기자 j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