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암호화폐 거래소 즉시 퇴출 위기

[금융위, 위장 집금계좌 전수조사]
'숨은 벌집계좌' 싹 찾아낸다
중소거래소 대표 명의 계좌 만들고
투자자들 예치금 받아 거래 활용 등
편법운영 많은데 횡령 방지 어려워
9월 거래소 퇴출 맞물려 사기위험↑
당국, 적발땐 즉각 폐쇄 강경대응



금융 당국이 암호화폐거래소의 ‘벌집계좌'를 잘라내는 작업에 착수했다. 오는 9월 사업자거래신고 시한 이전에 일어날 수 있는 고객 예치금 횡령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극약 처방이다. 특히 명의도용이나 은행이 아닌 제2금융권 등을 통해 편법적으로 집금계좌를 운영해온 암호화폐거래소는 당장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됐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9일 금융감독원 등 11개 기관과 검사수탁기관협의체 제1차 회의를 열고 암호화폐거래소의 ‘위장’ 집금계좌 등에 대한 모니터링과 처리 방안 등을 논의했다.


집금계좌란 암호화폐거래소가 고객의 투자금을 받은 뒤 거래 대금을 결제하는 데 활용하는 계좌다. 과거에는 거래소가 이 집금계좌를 모(母)계좌로 두고 고객에게 가상계좌를 임의로 발급해 예치금을 받아왔다. 일명 벌집계좌로도 불린다. 하지만 실명 확인이 불가능한 가상계좌가 자금 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이에 은행이 발급을 제한했다. 현재 실명 확인이 되는 가상계좌 발급이 가능한 집금계좌, 쉽게 말해 실명계좌를 통해 거래 대금을 결제하는 거래소는 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 등 ‘빅4’뿐이다.


이렇다 보니 중소 거래소는 법망을 피해 편법적으로 집금계좌를 만들어 영업해왔다. 한 가상화폐거래소 관계자는 “보통 거래소는 사업비를 입출금하는 계좌와 고객 예치금을 받아 거래 대금을 결제하는 집금계좌를 구분해서 쓰는데 가상계좌 발급이 어렵다 보니 대표자나 임원 등의 명의로 계좌를 발급해 편법 사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이런 명의 도용 계좌의 문제는 고객 예치금을 해당 계좌의 실소유주가 가로채도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금 세탁 방지를 금지하는 특정금융정보거래법이 암호화폐 시장까지 아우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특금법 개정안은 지난 3월 시행됐으나 9월 24일까지 적용이 유예돼 있다. 즉 9월 이후부터는 실명계좌를 갖추지 못하면 원화로 암호화폐 거래를 중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 거래소가 줄폐쇄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이들 거래소에 투자금을 예치한 이들이 돈을 날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금융 당국이 사업자신고 시한인 9월 이전에 벌집계좌에 대해 칼을 뽑아 든 것도 이 때문이다. 고객 예치금을 가로챌 수 있는 편법 집금계좌를 사전에 파악한 뒤 이를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FIU는 위장 계열사나 제휴 법무법인 혹은 위장 제휴 업체의 명의를 도용해 벌집계좌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판단한다. 3조 8,500억 원 규모의 사기 범죄를 저지른 브이글로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거래소는 감시가 상대적으로 소홀한 상호금융이나 소규모 금융회사의 계좌를 집금계좌로 운영하고 있다.


금융 당국은 당장 암호화폐거래소의 집금계좌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각 금융회사는 9월까지 매월 조사 결과를 FIU에 통보해야 한다. 명의 도용인 경우 해당 금융기관이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만큼 강력한 모니터링 체계가 구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위장계좌와 타인 명의 계좌 현황 등의 정보도 수탁 기관과 유관 기관, 금융회사 등에서 공유하게 하겠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방침이다.


전수조사에서 적발된 위장 집금계좌는 바로 폐쇄 조치된다. 암호화폐거래소 업계에서는 개인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은 19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거래소가 사정권에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합법적인 집금계좌라도 개인계좌로 예치금 등 거액이 이체되는 의심스러운 거래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금융기관이 지체 없이 FIU에 보고하도록 할 계획이다.


/김상훈 기자 ksh25th@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