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후 4시 22분. 광주 동구 학동의 한 버스정류장에 있던 시내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정차하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려던 순간, 철거 공사중이던 5층 건물이 버스 위로 무너지면서 17명의 사상자를 냈다. 이 사고를 두고 곳곳에선 현장 안전 관리가 허술해 빚어진 인재(人災)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0일 광주경찰청·소방당국에 따르면 광주 동구 학동 4구역 주택재개발사업 근린생활시설 철거 현장에서 주변 도로를 덮친 건축물(지상 5층·지하 1층)은 전날부터 철거 작업이 시작됐다. 건물 뒤편부터 바깥 방향으로 한 층씩 부수며 내려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현장에는 굴착기와 작업자 2명이 있었고, 주변에는 신호수 2명이 배치됐지만 건물은 순식간에 7차선 도로변으로 쓰러졌고, 정류장에 막 정차한 시내버스를 그대로 덮쳤다. 당시 맞은편 버스정류장의 유리가 깨질정도로 충격이 컸다. 붕괴된 건물의 잔해와 토사의 높이만 무려 10m가 넘었다. 한마디로 붕괴 사고 발생 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안전장치가 없었다는 뜻이다.
이날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학동 644-4번지 일대 정비구역 내 12만6,433㎡ 내 대부분의 주택·상가 건물은 철거를 마친 상태였고, 무너진 5층 건물은 막바지 철거 대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전체 정비구역 철거 공정률은 9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 현장 관계자는 긴급 브리핑에서 “집게 형태의 장비를 장착한 굴삭기가 건물을 조금씩 허무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이날 기준으로는 5층 정도 높이에 있었다”고 밝혔다. 현장 인근 아파트의 한 입주민도 “전날 오전부터 굴삭기가 동원돼 해당 건축물 뒤편 저층부부터 일부를 허물었다”고 설명했다. 철거대상 뒤편에 폐자재 등을 쌓아 올렸고, 잔해 더미 위에 굴삭기가 올라앉아 남은 구조물을 부쉈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황은 “안전 펜스가 무너지면서 잔해 더미 위 굴삭기 1대가 보였다”는 인근 상인의 목격담으로도 뒷받침된다.
건축 전문가도 이번 사고 현장의 철거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송창영 광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다층 건물을 철거할 때 '탑다운 방식'으로 작업을 하면 수직 하중을 늘 고민해야 한다"면서 "이번 사고처럼 건물 뒤쪽에 흙더미를 쌓고 철거 작업을 할 때는 수평 하중이 앞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다. 구조 안전 분석이 선행됐어야 한다"고 밝혔다. 소방당국은 “건물이 무너지는 방향이 앞쪽으로 쏠릴 위험이 높았고 전조 현상(특이 소음 발생)이 있었는데도, 인도만 통행을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평소 차량이 많이 오가는 편도 3차선 도로와 인접해 있으면서도 통행 제한을 하지 않은 셈이다.
경찰은 "건물 자체가 도로 앞으로 갑자기 쏟아졌다"는 목격자 진술을 확보, 구조 작업을 마치는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오는 10일 오후 1시께에는 국과수와 합동으로 현장 감식에 나선다. 추후 안전 수칙 준수와 업무상 과실 여부 등에 대한 수사를 벌인다.
/김경림 기자 forest0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