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쪼개기’ 기획부동산 중 최대어로 꼽히는 케이비경매 수뇌부 등 임원진 32명이 총 790억원대 불법 다단계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핵심 수뇌부 3명의 경우 이미 다른 수사 기관에서 기획부동산 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아 구속됐거나 이미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이어서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을 포함한 ‘지분 쪼개기’ 기획부동산이 지난 수년간 판매한 임야 지분은 수조원으로 추산되는 만큼 추가 기소되는 사건이 계속해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11일 서울경제 취재 결과 대구지방검찰청 부동산 투기사범 전담수사팀(부장검사 고형곤)은 지난 10일 ‘지분 쪼개기’ 기획부동산 케이비경매의 수뇌부 황모 회장과 노모 총괄사장, 이모 사장을 불구속기소했다. 또 검찰은 지사장과 임원들도 줄줄이 재판에 넘겼다. 천안지사장을 구속기소하고 임원 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서울 화곡·구로·홍대·주안·군자지점 지사장과 임원 등 6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대구지사장을 구속기소하고 임원 1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수뇌부의 경우 개발 가능성이 없는 토지를 염가에 매입한 후 개발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속여 피해자 230명으로부터 매매대금 합계 86억 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사기)를 받는다. 또 직급에 따라 판매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790억 원 규모의 무등록 다단계판매업을 영위한 혐의(방문판매법 위반)를 받는다.
검찰 수사 결과 수뇌부는 본사를 통해 기획부동산 법인 전체의 운영·관리·회계 등 모든 업무를 총괄했다. 이들은 지점에서 판매할 토지를 염가에 매수하고 매수 가격보다 3~6배 부풀린 판매 가격을 책정한 다음 각 지점에 공급했다.
지점은 ‘전무-상무-본부장-실장-차장’ 직급으로 운영됐다. 지점은 일당 7만 원을 미끼로 다수의 텔레마케터를 모집한 후 판매 실적에 따라 1~10% 직급별 수당을 지급하는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운영됐다.
영업 조직의 토지 판매대금을 관리하는 총무조직도 두었다. 총무조직은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본사 임직원들에게 수당을 지급했다. 이를 통해 황 회장은 52억 원 상당, 노 총괄사장 35억 원 상당, 이 사장은 36억원 상당의 판매 수당을 취득했다. 수뇌부들은 수십억원의 범죄수익으로 고가의 외제차를 운행하는 등 호화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케이비경매는 서울경제가 지난 2019년 포착한 ‘지분 쪼개기’ 기획부동산 집단 중 한 곳이다. 케이비경매 외에 우리경매, 코리아경매가 거대 기획부동산 집단이다. 본지는 이들 집단을 지난 2년여에 걸쳐 추적 보도해왔다.[참조 기사 ▶두 ‘큰손’ 기획부동산, 年1조어치 땅 판매 ‘쥐락펴락’···갖고보니 ‘기획된 땅’]
세 집단은 전국에 수십 개 지점을 운영하며 임야 지분을 판매해왔다. 특히 이들은 임야를 서로 공유해가며 지난 수년 간 수천억원 어치를 팔아온 것으로 추산된다. 기획부동산 업계의 최대 사기 프로젝트로 꼽히는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73번지도 이들이 나눠 판 곳이다. 이들은 약 4,800명에게 974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참조 기사 ▶해발 540m 청계산 주인 4,800명의 속사정은]
이번에 재판에 넘겨진 케이비경매 황 회장은 우리경매 황모 회장의 친형이다. 우리경매 황 회장은 광주서부경찰서 수사를 받은 끝에 지난해 사기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이 확정됐다. 당시 노 총괄사장도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피해자 51명에게 6억1,297만원을 편취한 혐의다.[참조 기사 ▶'임야 지분 판매 사기' 기획부동산 회장, 징역 2년6개월 확정]
우리경매 황 회장과 노 총괄사장은 지난해 6월 인천지검 부천지청이 우리경매의 인천 지역 지점장인 부사장 A씨 등 3명을 구속기소할 때 공범으로 불구속기소됐다. 피해자들의 고소를 대리한 법무법인 혜의 고소장에 따르면 총 52명에게 31억5,000만원을 편취한 혐의가 적용됐다.[참조 기사▶땅 주인 2만명인데 사기라니···지분 쪼개판 기획부동산 구속기소]
케이비경매 황 회장과 이 사장은 지난달 창원중부경찰서에서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이는 앞서 창원 소재 김은구 법률사무소가 케이비경매 창원지사에서 지분을 매입한 46명을 모아 고소한 사건에 대한 수사다. 고소장에 적시된 피해 공유 지분은 총 159개, 금액은 15억 4,447만 원이다. 경찰은 140억 원 상당의 추징 보전도 완료했다.[참조 기사 ▶ ‘지분 쪼개기’ 기획부동산 케이비경매 경영진 구속]
검찰이 파악한 케이비경매의 범행 수법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개발이 제한된 토지를 찾아 싼 값에 매입한다. 이는 개발제한구역, 군사보호지역, 비오톱 1등급 등으로 지정된 토지다. 이런 토지는 사실상 개발 가능성이 없어 가격이 저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용한 것. 예컨대 비오톱 1등급의 경우 특정 동·식물의 서식지로 ;‘특별히 보호가치가 있어 절대적으로 보전이 필요한 유형’으로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두번째는 판매 가격을 매입 가격의 3~6배 가격으로 부풀린 가운데 지분으로 쪼개 파는 것이다. 이는 저소득 서민들이 소액으로도 땅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이들은 토지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주변 개발호재들을 갖다 붙여 설명하도록 직원들을 교육했다. ‘맹지’나 ‘산꼭대기’에 위치한 개발 불가능한 땅인데도 곧 개발될 것처럼 홍보하게 한 것이다. 유명 정치인 등 저명 인사도 땅을 샀다는 식의 소위 ‘뻥 브리핑’을 통해 투자가치 있는 것처럼 허위·과장된 내용을 반복해서 교육했다고 한다.
각 지점에 판매 토지를 배분해 경쟁시키는 수법도 사용했다.이들은 각 지점에 판매 수량을 할당하고 타 지점과 영업실적을 비교하고 판매 실적에 따른 시상 제도 등을 통해 높은 영업 실적을 올리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들은 부동산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가정주부나 고령자들을 먹잇감으로 삼았다. 피해자들은 ‘일당 7만원을 받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구인광고 등을 보고 영업사원으로 들어온 직원과 직원의 지인들이었다. 이들은 소위 ‘사팔가’로 통칭되는 “사던지, 팔던지, 나가던지”라는 법인 운영방침에 따라 영업사원들에게 판매를 강요하고 또 강매도 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피해자들은 후 피고인들에 속아 어렵게 모은 재산을 날렸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검찰은 “엄마가 반지하에 살면서 모은 노후자금이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 “무지한 주부들을 모집했다. 썩은 땅을 갖고 와 이렇게 피해를 주니 엄벌해 달라” “어머니가 지인의 투자 권유에 1억원을 날렸다. 77세 노인이 죽고 싶으시다고 매일 울고 계신다”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번 수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이 계기가 되었다. 해당 의혹이 불거진 뒤인 지난 3월30일 대검찰청은 ‘부동산 투기근절 총력 대응’ 지시를 내렸다. 여기엔 최근 5년간 처분된 부동산 투기 관련 사건을 전면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담겼다. 관련 범죄 첩보를 수집·분석하고 추가 수사와 처분 변경 필요성이 있을 경우 재기하여 검사기 직접 수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검찰은 기처분된 부동산 투기 관련 사건을 점검하다가 이 기획부동산 업체와 관련해 불기소 처분된 사건 18건과 수사 중 사건 5건을 확인했다.
검찰은 이들이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고 불법 다단계 방식으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투자 가치가 없는 토지를 판매하여 다수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법인과 피해토지 전수조사 등을 통해 범행 전반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법인사무실 15곳과 주거지 3곳을 압수수색했다. 또 수백 건의 금융계좌 추적도 진행했다. 그 결과 790억원 상당의 피해 규모와 기획부동산 법인 조직을 발각해냈다.
검찰은 이 기획부동산이 정상적인 부동산 유통시장의 흐름을 왜곡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불법 다단계 방식을 사용하여 가까운 가족·지인을 통해 그 폐해를 사회 곳곳에 침투시켜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고 봤다.
더군다나 피해자 대부분은 저소득층 및 노인·가정주부 등 사회적 약자들로서 적극적인 법적 대응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또 범행 특성상 단 건의 거래만으로는 혐의 입증이 어려워 피해자들이 기획부동산을 고소해도 처벌될 가능성이 떨어졌다.
검찰 관계자는 “운영진들이 취득한 범죄수익을 추징하고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등 범죄수익 환수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향후에도 검사 직접 수사 개시가 가능한 부동산 투기 사범들에 대해 적극 수사하는 등 엄정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