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최대 규모 손해배상 소송’에서 재판부가 각하 결정을 내린 가운데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또 다른 ‘일제 강점기 관련 소송'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린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 및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 25여개가 흩어져 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강제동원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최대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판단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으로 사실상 원고 패소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대법원의 전원 합의체 판결이 나온 지 2년 8개월 만에 하급심에서 정반대의 판결을 내린 것으로 법적 혼란이 예상된다.
하급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뒤집은 것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사실상 기준 판례로 작용하는 만큼 하급심으로서는 전원합의체의 판결을 뒤집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5월 이번 사건 변론이 6년 만에 재개되자마자 재판부는 바로 선고 기일을 지정했다. 피고 측이 추가 변론 기일 지정을 요구하자 재판부는 “이 사건이 우리 재판부가 담당하는 사건들 중 가장 오래된 사건”이라며 “이미 두 차례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던 사건으로 법리가 다 정리됐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재판부가 ‘대법원의 판단’을 언급해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다수 의견을 따를 것이란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어차피 상급심에서 뒤집힐 판결이기에 굳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와 어긋나는 판결을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법관이 본인의 소신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어도 굳이 ‘깨질' 판결을 할 이유는 없다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다.
또한 2년 8개월 만에 뒤집힌 점 역시 예외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과거의 법리가 맞지 않아 뒤집히는 경우는 있어도 이번 강제징용 소송의 경우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2년 8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에 일본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이 25여개인 것으로 알려져, 향후 다른 재판부의 판단 역시 주목된다.
"대한민국이 청구권 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서세동점의 제국주의 시대에 강대국의 약소국 병합이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주장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실정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
“이제 막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위신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국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결국 한미동맹으로 안보와 직결돼있는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판결문 곳곳에 법리 외적인 판단이 담긴 문장들이 반영돼 통상의 판결문과 다르다는 평가와 비판도 이어졌다. 법리적인 이야기를 떠나서 가치 판단의 문구가 들어갈 경우 논란의 대상이 되기에 굳이 반영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사회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 15개 시민단체는 “국가 이익을 앞세워 피해자들의 권리를 불능으로 판단한한 판결”이라며 “판결이 야기할 정치·사회적 효과를 언급했는데 이는 사법부가 판단 근거로 삼을 영역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에서 비판도 나왔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9일 성명을 내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들여온 돈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등의 표현에 대해 비판했다. 지난 10일 황병하 광주고등법원장은 최근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려 “식민지배에 대해 국제법상 불법인지를 따지는 건 난센스”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역시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의 경우 같은 법원에서 불과 3개월 만에 정반대의 판단을 내리며 법적 혼란이 가중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1·2차 소송 판결을 가른 건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상의 원칙 인정 여부다.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위안부 피해 1차 소송 재판부는 “국가가 반인권적 행위로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줬을 경우까지도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재판부는“1인당 1억씩 지급하라”며 위안부 피해자 측 손을 들었다.
한편 같은 법원의 위안부 피해 2차 소송 재판부는 “대한민국은 외국을 상대로 한 민사재판권 행사 범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바 없다”며 “현 시점에서 국가면제에 관한 국제관습법, 대법원 판례 등을 보면 외국인 피고에 대한 손배소가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국제 관습법도 국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규범’이라는 취지에서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위안부 손배소 판결의 경우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게 1차 소송이 특이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국가면제의 인정이 일반적”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국제사회가 유엔 피해자의 권리 원칙 등을 통과시켰지만, 실제 해당 원칙에 따라 인권 침해 사안이 해결된 사례가 드문 점도 있다.
위안부 피해자 1차 소송의 경우 원고 승소 확정 판결을 받고 지난 4월 원고들의 소송 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국내에 소유한 재산 목록을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하는 재산명시신청을 법원을 냈다.실제로 압류 가능한 일본 정부 재산을 확인하며 승소 금액을 받기 위해 강제 집행에 나서는 절차다. 일본 정부의 재산을 압류할 시 외교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만큼, 실제 집행엔 난항이 예상된다.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송도,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도 결국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지난 7일 ‘강제 징용 손배소 각하’ 결정에 원고 측 소송 대리인인 법무법인 한세의 강길 대표변호사는 “대법원 판결과 정반대의 부당한 판결”이라며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결국 또 다시 대법원에 가서, 기존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인정하거나, 새롭게 정립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현재 하급심 판결이 25여개 걸려있는 만큼 당분간 법적 혼란은 불가피해진다.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위안부 소송은 1심의 판결이 다른 상황에 대법원 판결이 없는 만큼,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 위안부 2차 소송의 원고 측은 판결이 나오자마자 즉각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는 등 소송 장기화가 예상된다.
/구아모 기자 amo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