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회의원 임기, 반으로 줄여야”…"노무현, 신념대로 싸워 존재 증명"

책 '공정한 경쟁'으로 본 이준석의 사상·사람

국민의힘 이준석 신임 대표가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국회의사당역에서 국회로 첫 출근을 하고 있다. 대표실 한 관계자는 “이 대표는 평소에도 따릉이를 애용했으며, 당 대표 차량은 있으나 운전기사를 아직 구하지 못했다”라고 전했다./성형주 기자

“정책 실패를 엄벌하는 쪽으로 가려면 그 수단은 선거인데, 우리의 경우 (국회의원 임기) 4년이 너무 길다는 것입니다. 2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보죠.”


헌정 사상 최초로 ‘30대 제1야당 당 대표’에 오른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지난 2019년 출간한 책 ‘공정한 경쟁’에서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기득권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는 하원이 정책을 결정하고 정치를 이끌어 가는데, 2년마다 선출한다”며 국회의원 임기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다만 이 대표는 13일 서울경제에 이같은 주장에 대해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미국 하원의원 임기를 기반으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에서) 입법은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정한 경쟁’에는 당시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이었던 이 대표의 이같은 현실 정치와 보수에 대한 진단, 그가 지향하는 이상적 정치와 보수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이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2012년 이후 8여년간 정치 활동을 거치면서 정리된 생각들이다. 그는 ‘여는 글’에서 “젊은 정치와 개혁보수가 선 중요한 기로 앞에서 잠시 숨을 죽이고 고찰의 과정을 통해 유튜브 동영상보다 구체적이고 함축적이고 빨리 감기가 되지 않는글로 적힌 보수의 가치를 전파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제공=나무옆의자


합리·공정·자유

이 대표는 이 책에서 이번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이준석 돌풍’을 일으키며 내세운 가치인 공정·경쟁·실력을 전면적으로 다루었다. 이 대표는 “한국의 보수는 진짜 보수가 아니다”며 “정치를 시작하면서 내가 합리적인 보수, 제대로 된 보수를 한번 해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 생활을 하면서 제 몸에 자리 잡은 더 큰 가치는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효율성, 공정성 이런 것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합리주의”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자유’를 추구해야 할 가치로 꼽았다. 그는 “공정은 그 위에서 하는 달리기 게임”이라며 “자유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동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자유의 가치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낙오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우리는 그들을 위해 어떤 제도를 만들 것인지 고민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앞으로의 아젠다(사회적 의제)는 ‘공정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 세대가 원하는 공정의 가치를 지금의 집권 세력은 잘못 해석하고 있고, 공정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에 있어서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력주의·엘리트주의

이 대표는 지금의 시대정신은 실력주의이고, 자신이 그 시대정신을 담당하고 싶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그는 “한국은 산업화도 민주화도 태동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시대정신에 맞는 리더십이 부상하리라고 믿는다”며 “이전 시대와 다른 시대정신을 가진 정치인이 리더가 될 것이다. 저는 그런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실력, 실력주의라고 생각한다”고 단언했다. 그는 “(새) 아침을 열어야 할 의무가 젊은 정치인에게 있다”며 “그 몫, 새로운 시대정신을 담당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경험과 경륜을 내세우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실력 부족이 의심된다는 견해도 밝혔다. 그는 “경험과 경륜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실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경험과 경륜을 많이 들먹이는 정치인들은 연공서열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거꾸로, 그렇게 나이 먹도록 무엇을 쌓았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엘리트주의를 긍정하기도 했다. 그는 “저는 기본적으로 실력 혹은 능력이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고 본다”며 “그런 측면에서 저를 ‘엘리트주의’라고 비난한다고 해도 기꺼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엘리트가 세상을 바꾸고,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믿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노무현

이 대표는 실력으로 고난을 극복한 정치인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그는 “저는 어렵더라도 기존 질서에 기대지 않고, 제 실력으로 청년정치를 실현시킬 생각”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기 신념대로 거대한 지역감정의 벽과 싸운 사람이다. 그런 식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해 결국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고난을 두려워하면 작은 것도 이루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그렇게 하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그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라는 대선 연설을 ‘감동 명언 세 가지’ 중 하나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연좌제’ 공격을 받았을 때 상대의 공격을 정면 돌파한 이 발언은 대선 과정 내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노 전 대통령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바 있다.




실력이 있는 현역 정치인으로는 김용태 전 미래통합당 의원을 거론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말한다면 젊은 사람 중에서 김용태 의원을 보시면 좋을 것 같다”며 “그 어려운 지역구에서 3선이 되었다. 그 때문에 능력과 비전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민주당 강세 지역인 서울 양천을에서 3선을 했다. 그는 21대 총선에서 구로구을에 윤건영 전 국정상황실장을 상대로 ‘자객 공천’ 됐으나 패배했다.


김종인

이 대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이 ‘생존 인물 가운데 정신적 스승’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와 김 전 위원장은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에서 함께 활동한 바 있다.


그는 ‘여는 글’에서 “이 책을 내기까지 지난 8년여의 정치권에서의 많은 경험과 더불어 직접적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김 전 위원장을 가장 먼저 거론했다.이 대표는 “젊은 딜레탕트가 정치를 거시적 관점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시절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에게 기술을 많이 배웠다”며 “김 전 위원장은 사람의 시야를 넓힌다”고 말했다. 또 “2012년 비상대책위원회 때 (김 위원장) 옆자리에 앉았는데 ‘저 할배는 말을 굉장히 직설적으로 하네, 이 양반은 저런 소리해도 괜찮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공격도 단순 명료해야 하고 방어도 단순 명료해야 한다는 큰 진리를 배웠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2년 3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한 카페에서 당시 새누리당 김종인, 이준석 비상대책위원이 19대 총선을 앞두고 박상일 후보의 저서 '내가 산다는 것을' 들고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이 대표는 바른미래당 정치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적어가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는 정병국·이혜훈·유승민 전 의원에 대해 “새로운 개혁보수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힘과 조언자가 되어 주셨다”고 말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의 정치를 재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동지가 됐다”고 전했다.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과 오신환·지상욱 의원을 두고는 “항상 젊은 정치의 표상이 되어 주신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정운천 전 장관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와 목표의식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밝혔다. 이중 유 전 의원과 하 의원은 책 추천사를 썼다.


오바마

이 대표는 ‘국내외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또 ‘갖고 싶은 별명’이 ‘한국의 오바마’라고 답하는 등 오바마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드러냈다. 이 대표는 당 대표 후보 시절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나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같은 젊은 지도자 중 롤 모델이 있느냐’는 질문에 “별 달리 없다”며 “오바마 전 대통령이 롤 모델”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 대표는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 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탄핵은 정당했다”며 정면 돌파를 시도할 때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거론했다. 그는 오바마 전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라크 전쟁에 찬성하는 사람도 애국자요, 반대하는 사람도 애국자다” “백인의 미국과 흑인의 미국, 라틴계탄의 미국, 아시아계의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미합중국이 있을 뿐이다”라는 발언을 읊으며 “오바마가 외친 통합의 시발점은 관대함이다. 그리고 통합의 마지막, 완성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는 자신감”이라는 해석을 붙였다. 그는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고 그 사람도 애국자라는 것을 입 밖으로 내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탄핵에 대한 제 복잡한 입장이 정치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면 우리는 큰 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탄핵에 찬성한 자신을 포용해달라고 호소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 개혁

이 대표는 서두에서 언급한 국회의원 임기 단축 외에도 여러 선거제도 개혁안을 내놓았다. 눈에 띄는 것은 광역시의 구의원을 없애고 시의원을 두 배로 늘리는 방안이다. 그는 “현재 서울시의 경우 100명의 시의원이 있다. 인구에 비해 의원이 적은 편”이라며 “만일 200명 정도 되면 상임위도 분화해 의회의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왜 인구가 10만 명인 구에 의회가 따로 존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국회의원 선거 비례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현재의 소선구제를 대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로 바꾸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도 주장했다. 이 대표는 “불비례성을 더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자유한국당에서 말하는 비례대표를 없애고, 아예 300석을 대선거구제나 중선거구제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며 “그렇게 되어서 5개 선거구를 하나로 합해 넷 혹은 다섯을 뽑는다면 정의당이나 바른미래당은 15퍼센트 정도를 얻어 당선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불비례성이 해소되어 사표 방지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권형 기자 bu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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