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남동' 된 한남동 …'젊은 미술' 몰린다

['MZ' 겨냥한 미술관 잇따라 오픈]
컨템포러리 갤러리 파운드리 개관
공업용 경첩 등 산업 재료 재구성
실험적 창작에 심미성 담아 전시
신한카드 '더프리뷰 한남' 첫 선
1990년대생 신진 작가 대거 참여
컬렉터-동시대 창작자 연대 강화

첨단 유행과 문화, 소비가 어우러진 서울 한남동의 6월이 ‘젊은 미술’로 뜨겁다.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으로 미술 시장의 핵심 고객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MZ 세대를 겨냥해 새로운 미술관이 문을 여는가 하면 관련 행사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파운드리 서울의 개관 전시로 선보이고 있는 디자인 듀오 강혁의 개인전 ‘REPEAT’/사진=송주희기자

은행 금고 같은 자동 철문이 열리자 은빛 들소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옆엔 나이지리아 꼬마 염소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섰다. 관절 하나하나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이 동물들은 놀랍게도 문이나 서랍에 달린 공업용 경첩과 볼트, 너트, 스프링을 조합해 만든 작품들이다. 차가운 금속 부품이 인류의 따뜻한 보호가 필요한, 입체감이 살아 숨 쉬는 야생 동물로 되살아 난 것이다. 생기 넘치는 형상 주변으로는 독특한 액자 여럿이 걸렸다. 한 땀 한 땀 나일론 실로 수놓은 사각 스틸 프레임 위의 흰 캔버스는 자동차에 설치됐던 에어백이다. 입체 에어백이 평면의 캔버스가 되고, 그 위에 나일론 실과 폴리에스터가 붙어 다시 입체의 무엇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대량 생산물은 고유의 심미성을 입게 된다.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기술적, 주제적, 기능적 확장을 시도해 온 디자인 듀오 ‘강혁’의 개인전 ‘리핏(REPEAT)’이 열리는 이곳은 지난 11일 한남동에 문을 연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 파운드리 서울이다.


파운드리 서울은 부산의 파이프 자재 제조사 태광의 자회사로, 총 3,245㎡ 규모의 건물에서 1층 일부와 지하 1~2층을 갤러리로 사용하며 실험적 창작물로 주목 받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할 계획이다. 파운드리 서울은 7월 25일까지 2개의 개관 전시를 개최하는데, 신진 작가 발굴·창작 지원 플랫폼인 ‘바이 파운드리’를 통해 강혁의 실험을 공유하고 있다. 강혁은 최강혁, 손상락으로 이뤄진 디자인 듀오이자 동명의 패션 레이블이다. 이번 전시에선 최강혁의 평면 작품 6점과 손상락의 입체 작품 4점을 선보인다. 강혁은 에어백, 나일론, 폴리에스터, 공업용 경첩 등 산업 재료를 해체-관찰-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물로 재구성한다. 두 사람은 빠르게 대량 생산된 소재들을 반복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창작 과정을 통해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통해 대량 생산품 고유의 심미성과 가치를 담아낸다.



파운드리 서울이 개관 전시로 선보이고 있는 헤닝 스트라스부르거의 ‘오 배드 보이(OH BAD BOY)’/사진=파운드리 서울

또 다른 개관 전시는 독일 출신의 블루칩 작가 헤닝 스트라스부르거의 ‘오 배드 보이(OH BAD BOY)’다. 팝 문화와 이미지 문화를 주제로 작업하는 그는 범람하는 이미지를 감각적인 컬러와 20세기 미술사에서 추출한 상징적 요소를 이용해 자신만의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을 펼쳐왔다. 윤정원 파운드리 서울 이사는 “한남동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오가는 유행·문화의 요충지”라며 “미술에 대한 조예가 깊든 그렇지 않든 많은 이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젊고 실험적인 현대미술 작품을 소개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남동 블루스퀘어 네모홀에서 열리고 있는 아트페어 더 프리뷰 한남. 전시장 입구에는 이병찬의 대형 설치작품이 걸려 있다./사진=송주희기자

길 건너 블루스퀘어 네모홀에서는 MZ 세대 아티스트와 MZ 세대 컬렉터를 연결하는 새로운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다. 오는 20일까지 열리는 ‘더 프리뷰 한남’이다. 신한카드가 출범시킨 사내 벤처 ‘아트 플러스’를 통해 처음 선보인 이번 행사에서는 공간 형, 상업화랑, N/A, 얼터사이드, 옵스큐라, 을지로 오브 등 총 32곳의 갤러리가 참가해 128명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아트페어 참가 이력이 없는 신진 작가를 앞세워 가장 최신의 작업 흐름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특징이다. 출품 작가의 나이나 경력에 별도의 제한을 두지는 않았지만, 최연소 참가자인 1996년생 이목하를 비롯해 90년대생 작가들의 작업이 대거 소개되고 있다. 또 차지량, 박문희, 이병찬 등 전시 중심 작가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더 프리뷰는 직장인 방문객을 겨냥해 퇴근 후 페어를 방문할 수 있도록 오후 9시까지 전시장을 개방한다. 출품작의 가격도 10만~1,000만 원대로 초보 컬렉터나 미술품 구매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위해 진입 문턱을 크게 낮췄다.


더 프리뷰 측은 “아트테크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은 요즘 수익을 남기기 위한 투자보다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해 소유하고, 이를 통해 작가의 미래에 투자하는 일이 중요해졌다”며 “이번 아트페어가 새로운 세대의 컬렉터와 동시대 창작자들이 연대를 구축하고 예술의 가치와 경제성에 대한 대화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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