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빨대가 종이 빨대로,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친환경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등장 이후 분야를 막론하고, 시장은 조금씩 변해가고 있죠. 조선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조선업에 불어온 친환경 바람, 우리나라 조선 기업들에 엄청난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데요. 왜일까요?
먼저 조선업에 친환경 바람이 불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UN의 산하 기관 중엔 IMO, 국제해사기구라는 조직이 있는데요. 선박의 항로나 교통 규칙 등을 국제적으로 통일하기 위해 설치된 전문기구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174개국이 가입되어 있죠.
그런데 IMO가 전 세계의 모든 선박에 2020년 1월 1일부터 연료의 황산화물 함유량을 3.5%에서 0.5%로 대폭 줄이라는 규제를 내렸어요.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IMO 회원국 항구에 들어올 수 없다고 못을 박아버렸죠.
여기에 더해, 연료 내 황산화물 함유량 0.1%를 넘는 선박들은 다닐 수 없는 ‘ECA 해역’도 만들어버렸습니다. 현재 발트해, 북해, 미국 대다수 해역과 카리브 해안, 중국해역 등이 ECA 해역으로 지정돼 있죠. 우리나라의 5대 대형 항만 인천, 평택·당진, 여수·광양, 울산, 부산항도 지난해 9월부터 ECA 해역으로 지정됐어요.
황산화물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강력한 규제를 만든 걸까요? 황산화물은 선박의 연료(벙커C유)가 소모될 때 배출되는 배기가스에 포함된 물질인데요. 최근, 황산화물이 미세먼지를 형성하고 산성비를 내리는 주범인 것이 알려지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지금까지 선박용 연료의 황산화물 배출 기준은 육상 운송 연료 기준보다 훨씬 낮았어요. 선박용 연료인 벙커C유의 황산화물 함유량이 자동차 연료보다 1,000~3,000배 많은 수준이었죠. 그렇다 보니 선박을 통한 오염물질 배출은 심각했어요. 전 세계에서 제일 큰 배 15척이 배출하는 황산화물의 양이 전 세계 모든 자동차가 배출하는 황산화물의 양보다 많았을 정도였으니까요. 황산화물의 위험성이 밝혀진 이상 IMO는 이제는 선박의 황산화물 배출을 규제하지 않을 수 없었죠.
이러한 IMO의 환경 규제에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는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유럽의회에서 2020년 9월에 통과시킨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 시행 등이 맞물려 조선업에는 거대한 친환경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등장했어요.
◇ 조선업 관심 집중! LNG가 뭐길래?
친환경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우리나라 조선업의 재도약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화석 연료를 지양하는 전 세계적인 움직임 덕분에 조선업에서 LNG 선박이 대세로 주목받기 시작했는데요. 마침 또 우리나라 조선사들의 높은 기술력이 가미된 LNG선박이 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었어요.
LNG는 -162℃로 냉각해 만드는 액화 천연가스를 말하는데요. 기존 선박 연료인 벙커C유와 비교해 황산화물 배출량을 90~100% 절감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죠. 기존 연료에서 황 함유량을 낮춘 저유황유보다 선박 연료 비용 절감 효과도 월등히 높아요. 초대형 원유 운반선 기준으로 하루 7,732달러, 약 850만 원이 절약되는 수준이에요. 이렇듯 경제성도 높고, 황산화물 배출도 거의 없는 LNG는 현재의 친환경 비즈니스 패러다임에 대응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게 됐어요.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 즉 LNG추진선은 최근 전 세계적인 환경 규제 흐름에 딱 부합해 해운사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어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2025년, 전 세계에서 새로 만들어질 선박의 60.3%를 LNG추진선이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죠.
◇ LNG추진선 MADE IN KOREA는 명품?
LNG추진선은 연료 공급 시스템이 매우 중요합니다. 추진 장치가 잘 작동하기 위해선 사용 가능한 압력과 온도의 LNG를 적절히 내보내야 하는데, 여기에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조선 빅3는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자적인 LNG 연료 공급 시스템(현대중공업:Hi-gas, 삼성중공업 FuGas, 대우조선해양 HiVar)을 확보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높은 기술력 덕분에 LNG 연료 추진선 ‘made in Korea’는 시장에서 명품으로 인정받으며 큰 사랑을 받았죠.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월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총 50척의 LNG추진선 수주 실적을 보유하고 있어요. 지난 2018년 7월과 지난해 9월엔 세계 최초 LNG로 추진되는 대형 유조선과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제작해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어요.
삼성중공업은 올해 2월 기준 전 세계 LNG 연료 추진 초대형 유조선 총 46척 중 26척을 수주하며, 이 선종에서 세계 시장점유율을 57%까지 확보하고 있죠.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3월, 미주·유럽·아시아 지역 선주 세 곳으로부터 30만 톤 급 LNG 이중연료 추진 초대형 원유 운반선 10척을 수주해냈어요. 총 1조 1,000억 원 규모의 수주 실적인데, 이 계약으로 올해 목표 수주액의 20%를 채웠어요.
그렇다면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은 어떨까요? 중국과 일본은 관련 기술 인력이 부족하고, 건조 경험이 적어 선주들이 못 미더워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은 저품질 선박으로 유명한데요. 2017년 9월 중국의 국영기업인 후동중화조선이 프랑스 해운사로부터 초대형 LNG추진 컨테이너선을 수주해냈는데, 기술력 부족으로 중간에 선박 제작을 포기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후 중국의 SCS조선으로 수주가 넘어갔지만, 이들도 예정 인도 시기였던 2019년 11월을 훌쩍 넘겨 2020년 9월에야 선박을 인도했어요.
상황이 이렇게 되자, 해운사들은 돈을 더 주더라도 한국산 LNG추진선을 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죠.
◇ LNG‘운반선’도 훨훨 난다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친환경 바람을 타고 LNG를 운반하는 선박인 LNG운반선의 수요도 함께 급증했어요. LNG는 액체 상태의 천연가스로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보다 부피가 600분의 1이나 작습니다. LNG를 한 번에 많이 운반하기 위해 액체 상태로 만들어 운반하죠. LNG 운반선 제작 역시 우리나라가 꽉 잡고 있습니다.
LNG 운반선에는 ‘화물창’이라 불리는 LNG 저장창고가 실려 있습니다. 화물창은 LNG가 ?162℃ 아래의 초저온을 유지하고, 파도 등의 외부 충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만약 초저온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운항 중 LNG가 기화돼 대형 폭발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죠. 더운 여름엔 190℃ 이상의 온도 차이까지 견뎌내는 화물창은 LNG운반선에 꼭 필요한 시설입니다.
현재 운항하는 LNG운반선은 대부분 사각형의 화물창과 선박을 일체화한 ‘멤브레인형 화물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주력해서 제작하는 화물창 형태인데요. 1990년 대까지 LNG선박 시장을 이끌던 일본을 밀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화물창 때문이었죠. 일본은 쭉 구 모양의 ‘모스형 화물창’을 고집했거든요.
1990년대 초부터 한국 조선 빅3가 주력해 제작한 멤브레인 화물창은 일본의 모스형 화물창보다 적재량이 40%나 많습니다. 경제성이 좋다 보니 선주들의 수요는 결국 우리나라의 멤브레인 화물창으로 이동하게 됐어요. 덕분에 1990년대 후반부터 LNG선박 시장은 우리나라가 리드하게 됐죠.
멤브레인형 화물창이 탑재된 LNG 운반선 제작 과정에선, 화물창과 선박을 하나로 이어주는 용접 과정이 매우 중요해요. 엄청 어렵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용접 인력은 이 단계에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지고 있어요. 이 때문에 전 세계 해운사들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죠. 실제로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 몇 년간 LNG운반선 시장 점유율 80~90%를 유지하며 시장을 거의 독식했어요. 2017년엔 전 세계에서 발주된 LNG운반선 18척 중 12척을, 2018년엔 72척 가운데 66척, 2019년엔 60척 중 48척을 수주하며 꾸준히 수주 1위를 지켜왔죠. 높은 기술력과 선주들의 사랑에 힘입어 앞으로도 LNG운반선 시장은 우리나라가 꽉 쥘 것으로 보이는데요. 천연가스 생산국 모임 가스 수출국 포럼(GECF)은 지난달 12일, 향후 5년 동안 전 세계에 142척의 신규 LNG운반선이 발주될 것이며, 이 중 한국 조선 3사가 110척을 수주할 것이라는 예측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경쟁사와 비교해 생산능력 또한 월등해요. 중국 국영 기업 후동중화조선이 만들 수 있는 LNG운반선은 1년에 5척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조선 빅3는 1년에 약 50척을 만들 수 있죠. 중국 조선사들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이지만 기술력에서 여지없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요. 2018년엔 후동중화조선이 건조한 LNG 운반선 글래드스톤호가 19개월 만에 엔진이 고장 나 호주 인근 해역에서 두 달 넘게 멈춘 적도 있었죠.
◇ 시장 1위, 마냥 기뻐할 순 없는 이유
친환경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등장과 함께 우리나라 조선업은 다시 전 세계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어요. 2016년엔 전 세계 선박 수주 점유율 15.1%에 머물며 일본에도 밀렸던 우리나라지만, 지난해 말엔 약 3배 가까이 뛴 점유율 43%를 기록하며 시장 1위를 달성했죠. 내리막길을 걸었던 우리나라 조선업이 다시금 시장을 리드하기 시작한 현재, 여기저기서 ‘LNG 기술 초격차’, ‘한국이 조선 시장 장악!’이라며 연신 축포를 터트리고 있어요.
그런데요,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수주를 따내고는 있지만, 핵심 기술력이 우리나라 소유가 아니라 수익성이 높은 상황은 아니거든요.
LNG선박의 핵심인 초저온 저장 창고 멤브레인형 화물창 제작 기술은 우리나라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 엔지니어링 업체 GTT의 기술이죠. 우리나라 조선사가 LNG운반선 한 척을 만들면 선박 가격 5%에 달하는 로열티를 GTT에 지불해야 해요. 화물창 로열티 비용은 17만6000㎥급 LNG선 기준(2020년 5월 말 기준)으로 960만 달러, 한화로 약 112억 원으로 알려져 있어요. 100척을 만들면 1조 1,200억 원을 로열티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셈인 거죠. 업계에선 지난 15년간 한국 조선사가 GTT에 지불한 로열티가 4조 원이 넘는다는 말까지 들려요.
기술 자립을 위해 국내 조선 빅3와 한국가스공사가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화물창 기술의 국산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LNG가스가 누출되거나 화물창 표면에 결빙 현상이 발생하는 등 순탄치 않은 상황이에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핵심 기술을 국산화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다시 중국과의 저가 수주 경쟁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죠.
또 우리나라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LNG시대의 수명은 길어봐야 10년이라는 점도 간과하면 안 돼요. LNG선박이 완전한 친환경 선박이 아닌 과도기적 친환경 선박이기 때문이죠. IMO는 앞에서 언급한 황산화물 규제 뿐 아니라 탄소 배출도 규제하고 나섰어요. 2050년까지 선박 탄소 배출량을 70% 줄이라고 선언했죠. 그런데 LNG는 탄소를 배출해요. 기존 선박 연료이던 벙커C유보다 탄소 배출량이 30% 적을 뿐이죠. 따라서 LNG추진선과 LNG운반선이 당장의 환경 규제에는 적합할지 몰라도, 탄소 제로 시대로 나아갈 미래엔 금방 대세에서 밀릴 것이라는 인식이 전 세계 조선사들 사이에 팽배해요. 시장에선 LNG시대가 10년 이내에 저물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죠. 그리고 그 이후가 될 ‘탈 LNG시대’의 기술은 한국·중국·일본 모두 시작점에 서 있는 상황이에요. 누가 탈LNG시대를 리드할 것인지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고, 우리나라도 순식간에 밀려날 수 있어요.
그럼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맞아요. 시장을 리드한다고 축포를 터뜨릴 때가 아니고, LNG시대 이후를 이끌 차세대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달려야 해요. 다음 기사에선 어떤 미래 기술들이 조선업에서 주목받고 있는지, 한중일 조선사들이 차세대 선박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다뤄보겠습니다.
/김현지 기자 local@sedaily.com, 정민수 기자 minsoojeong@sedaily.com, 김지윤 인턴기자 wldbs5596@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