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4대 암호화폐 거래소를 대상으로 실명계좌를 내줘도 좋을지 판단하기 위한 검증에 들어갔다. 평가가 시작됐다는 것만으로 4대 거래소 실명계좌 재계약 기대는 커졌지만, 아직 4대 거래소 전원 통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4대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수십개 거래소 대부분은 여전히 검증을 해줄 은행조차 찾지 못한 상태인 만큼 암호화폐 거래소들의 ‘무더기 폐쇄’가 현실화 될 전망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 NH농협은행, 신한은행은 현재 실명계좌 제휴 관계인 각 업비트, 빗썸·코인원, 코빗에 대해 ‘가상자산 사업자(암호화폐 거래소) 자금세탁 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케이뱅크는 지난달부터 업비트와 평가 준비를 시작해 최근 본격적으로 서면 중심의 심사에 들어갔고, 신한은행도 이달 초부터 코빗을 서면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은행도 빗썸과 코인원으로부터 각 지난 17일, 지난달 말 평가를 위한 자료를 넘겨받아 막 서면 평가를 시작했다.
앞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권이 마련한 ‘위험평가 방안’ 가이드라인(지침)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현재 ‘필수 요건 점검’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계에서 은행은 해당 거래소의 정보보호관리체계( ISMS) 인증 여부, 금융관련법률 위반 여부, 고객별 거래내역 구분·관리 여부 등 법적 요건이나 부도·회생·영업정지 이력, 거래소 대표자·임직원의 횡령·사기 연루 이력, 외부 해킹 발생 이력 등 사업연속성 관련 기타요건을 문서나 실사 등의 방법으로 들여다본다. 서면 평가 등을 통해 필수요건 점검이 마무리되면 항목별로 점수를 매겨(정량 평가) 자금세탁 위험과 내부통제 적정성 등을 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암호화폐 거래소(가상자산 사업자)들은 9월 24일까지 실명계좌 등 전제 조건을 갖춰 특금법 신고를 마치지 않으면 사실상 문을 닫아야 한다. 현재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받아 영업 중인 4대 거래소 역시 은행의 이번 검증을 통과해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하면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거래대금 1위의 업비트가 불과 1주일 사이 약 30개의 코인을 무더기로 상장 폐지하거나 원화 마켓에서 제거한 사건도 사실 검증과 관련된 절박함이 드러난 사례다. 은행의 실명계좌 검증 과정이나 특금법 신고 과정에서 이른바 잡코인이 많을수록 안정성 측면에서 감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빗썸의 경우 최근 실질적 소유자가 사기 혐의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지는 등 지배구조상 불안 요소도 있다.
그나마 4대 거래소는 은행 평가라도 받을 수 있지만 나머지 거래소 대부분은 실명계좌 발급을 상담하고 평가를 받을 은행조차 구하지 못한 상태다. 지난 3일 금융당국과 20개 거래소의 첫 간담회에서도 거래소들은 “실명계좌 발급을 신청하려고 해도 은행들이 잘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금융위원회에서 좀 (은행들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말 좀 해달라”고 불만을 터뜨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20곳이 ISMS 인증을 받은 규모를 갖춘 거래소인 만큼, 나머지 군소 거래소의 경우 사실상 은행 검증과 실명계좌 발급은 포기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거래소들의 요구대로) 당국이 은행에 특정 거래소와 실명계좌 계약을 권유하는 것은 오히려 은행의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저해하는 행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현진 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