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택배 과로사, 이제는 노조도 돌아볼 때

박형윤 생활산업부 기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 분류 작업에서 해방된다. 사회적 합의 기구는 2차 합의를 통해 당장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택배 기사를 분류 작업에 포함시키지 않도록 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는 택배 기사들이 늘어나자 수차례 파업 등 진통 끝에 나온 사실상의 최종 합의문이다.


하지만 합의문으로 과로사를 막을 수 있을까.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늘어나면서 배송 작업을 포함한 전체 택배 기사의 작업 시간이 대체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있는 현재까지 택배 물량은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택배 기사들의 분류 작업 배제가 곧 근무시간 단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사업자 형태로 계약을 맺는 택배 기사들의 특성상 분류 작업 배제로 늘어나는 시간만큼 더 많은 일거리를 가져가려고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번 2차 합의가 아쉬운 부분은 정작 택배 기사들의 과로사 방지를 위한 합의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과로를 판단하는 핵심인 노동시간에 대한 합의 강도는 약하다는 점이다. 이번 합의문에는 적정 작업 시간이 1일 12시간,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또 4주간 택배 기사의 노동시간이 평균 주당 64시간을 초과하면 물량·구역 조정 협의를 통해 최대 작업 시간 내로 감축해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하지만 강제성이 약하다. 주 5일제 역시 시범 사업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 추가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그동안 노동시간을 줄이는 데 반대해온 주체는 택배 기사들이었다. 과로사 방지를 주장하면서 분류 작업 배제에만 힘을 쏟았다. 임금 보전이 안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사측도 택배비를 올려 그 일부를 택배 기사들의 임금 보전 등에 사용하기로 했다. 노조는 합의 과정에서 국민 생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파업을 주도하면서도 택배 기사들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해왔다. 분류 작업 배제 이후 기사들이 줄어든 근로시간을 잘 준수하는지 노조가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박형윤 기자 mani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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