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물가 상승률은 미스터리입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으로 있던 2017년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끝난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실업률이 최근 10여 년 만에 최저로 내려갔는데도 예상과 달리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를 밑돈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 의장도 쩔쩔매게 한 문제의 답은 아마존 효과였다. 아마존 효과는 온라인 상거래 활성화로 업체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가 상승이 억제되는 현상이다. 지구에서 생산되는 웬만한 물건은 다 거래되는 세계 최대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의 위력을 그는 몰랐다.
최근 열린 아마존 프라임 데이(유료인 프라임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원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 여는 할인 행사)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단한 아마존의 물가 조절 능력도 수명이 다했음을 느꼈을 것이다. 과거와 비교할 때 올해 프라임 데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할인 쿠폰이 없다는 점이다. 전에는 100달러짜리 상품의 경우 입점 업체가 25달러를 깎아주면 아마존이 같은 값을 한 번 더 빼줘 50달러에 살 수 있었다. 올해는 이런 행사가 자취를 감췄다. 할인이 없어도 소비자가 돈을 아낌없이 지불할 생각으로 충만해 있기 때문이다. 올해 프라임 데이의 매출은 110억 달러(약 12조 4,883억 원)로 역대 최대 기록을 세운 지난해 수준(104억 달러)을 뛰어넘었다.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억눌려 있던 소비 욕구를 마음껏 발산한 결과다.
구리 가격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줄곧 올랐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코로나19 여파로 채굴이 급감했다. 2위 생산국인 페루는 정정 불안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잖아도 쓰임새가 많은 구리는 요즘 자동차의 대세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바뀌면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전기차 한 대당 구리 사용량은 90㎏으로 내연기관차보다 6배 많다. 쓸 곳은 많은데 공급은 부족하니 값이 오르는 것이 당연하다. 석탄·천연가스·철광석 등 원자재가가 끝없이 오른 이유도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생산 감소다. 콩·밀·옥수수 등 곡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근본 원인 역시 이상기후로 인한 생산 차질이다.
아마존 효과가 사라지면서 소비가 끌어올리는 물가가 상당할 텐데 원자재와 곡물의 공급 부족이 밀어올리는 물가까지 겹친다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 전부터 시중에 뿌려진 과잉 유동성과 코로나19 위기를 돌파한다며 정부가 늘린 재정 지출을 생각하면 아주 센 4중 복합 인플레이션이 닥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황은 심상찮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정작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부는 낙관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큰 폭으로 오른 것을 일시적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2021년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8%다. “농수산물은 새로운 작물들이 들어오면 수급이 개선되고 석유류 가격은 3분기 피크가 된 후 살짝 둔화할 것”이라는 설명만 있다. 수요 증가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신경 쓰이지 않나 보다. “빠른 경기 회복과 함께 수요 측 물가 상승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한국은행과는 결이 다르다. 재정 지출 확대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도 하지 않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재정 지출 확대에 따른 물가 영향을 “상당 부분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우려는커녕 33조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데 이어 내년에는 600조 원이 넘는 초슈퍼 예산을 구상 중이다.
인플레를 잡으려면 금리를 올려야 한다.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 시점을 연내로 사실상 못 박았다. 문제는 빚이다. 한은이 펴낸 상반기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가계 부채가 2,045조 원에 달한다. 그러잖아도 빚을 감당하기 힘든데 금리마저 오른다면 무슨 수로 갚을지 걱정이다. 하필이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졸음 운전하다가는 사고 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