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튀기 보다 '군집의 美' 선택...도심 더 빛낸 건축철학

[건축과 도시-테헤란로 '센터필드']

센터필드 전경. 강남 테헤란로 주변 고층 건물과 조화를 이루면서 군집의 미(美)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 제공=디에이그룹




테헤란로와의 '건축 하모니'


외벽 세면으로 분할해 부피감 줄이고


두 동 사선으로 배치해 시각적 '틈' 살려


청회색 커튼월, 온몸으로 풍경 비춰



일월오봉도와 창덕궁에서 영감 받아


외벽 덮은 루버로 그림 속 폭포 형상화


건물 앞은 광장, 뒤편은 후원으로 꾸며


도심 속 쉼표…시대 초월한 디자인 담아



개체는 군집할 때 빛을 발한다. 저층 건물 사이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은 그 자체가 지닌 개성 이상을 표현하지 못한다. 하지만 여러 고층 건물이 모이면 그들이 군집해 이루는 스카이라인이 장관을 이룬다. 개체의 합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이 창조되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중심부에 들어선 센터필드는 그런 군집의 미(美)를 나타내는 건물이다. 센터필드는 그 자체로는 특별하지 않다. 반투명한 옅은 청회색의 커튼월로 포장된, 여느 도시에서 볼 법한 사무용 건물이다.


하지만 강남 한복판의 개성 넘치는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건물의 단순한 구조는 마치 테트리스 블록을 맞춘 듯 수직으로 솟은 도시에 들어맞는다. 배경을 반사하는 커튼월에는 주변의 고층 빌딩이 비친다. 날씨에 따라,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그 자체로 하나의 디자인이 된다. 센터필드의 단순미는 도시 속에 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줄이기 위해 저층부에 캐노피를 설치했고 건물 외벽을 3개의 면으로 분할했다. /사진 제공=디에이그룹

<테헤란로와의 ‘건축 하모니’>


지하 7층~지상 36층, 건물 2개 동으로 구성된 센터필드는 연면적이 24만 ㎡에 달한다. 테헤란로의 또 다른 랜드마크인 ‘강남파이낸스센터(21만 2,615㎡)’보다 크다. 이 때문에 건물을 처음 볼 때면 육중한 부피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모습은 아니다. 센터필드에는 고층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줄이고 주변과 조화를 이루게 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숨어 있다.


우선 센터필드는 사선으로 배치돼 있다. 연면적 수십만 ㎡에 달하는 건물이 연달아 배치돼 있으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압도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다. 건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공개용지가 들어서 있다. 여러 종의 수목과 더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광장이 있다. 건물 바로 앞의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에서 올려다보면 답답함보다는 시원한 개방감을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물이 주는 개방감에는 외벽 전면이 유리로 처리된 커튼월도 한몫을 한다. 반투명한 청회색의 커튼월은 건물 내부를 일부 보여주면서도 주변 배경을 반사한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근처 고층 빌딩과 함께 하늘이 보인다. 여기에 테헤란로에 맞닿은 건물의 전면부는 3개의 면이 덧대어져 있는 모양이다. 평면이 분할돼 있어 실제 크기보다 건물이 작게 보인다.


저층부에는 시선 분산을 위한 캐노피가 설치돼 있다. 외관 설계에 참여한 JMA 관계자에 따르면 인간이 익숙함을 느끼는 높이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효과를 위한 장치다. 로비 겉면 마감은 투명한 유리로 했다. 내부를 공개해 개방감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남측 공개용지 보도블록에 옛 르네상스호텔 건물의 경계선을 검게 표시해 놓았다. /사진 제공=디에이그룹

<전통 재창조…·르네상스 ‘흔적 남기기’>


건물이 위치한 곳은 옛 르네상스호텔이 있던 자리다. 국내 1세대 건축가로 이름이 알려진 고(故)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해당 호텔은 28년 동안 특급호텔의 자리를 지키며 강남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이 때문에 호텔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올릴 때 호텔이 가진 역사성과 건축미를 계승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르네상스호텔 ‘흔적 남기기’다. 센터필드는 호텔이 있던 건물과 같은 자리에 들어섰다. 건물의 남측 공개용지에는 옛 호텔의 외벽을 남겨 놓은 조형물이 있다. 그 주위는 옛 호텔 건물 경계선을 따라 보도블록 색깔을 달리했다. 이 같은 흔적 남기기는 건물 내부까지 이어진다.


신축 건물 내부 로비의 바닥과 천장에도 옛 호텔 경계선이 그대로 표시돼 있다. 또한 버선코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을 강조해 건물을 설계한 김 건축가의 건축 의도를 계승하기 위해 센터필드 저층부의 일부와 공개용지 화단 경계는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형을 넘어 실질도 옛 호텔을 닮았다. 현재 센터필드 웨스트타워에는 호텔이 들어서 있다. 르네상스호텔 상업 시설이 있던 자리에도 리테일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건물 외벽을 수직 파이프(louver·루버)가 덮고 있다. 옛 조선 그림 ‘일월오봉도’ 속 폭포를 형상화하기 위한 장치다. /사진 제공=디에이그룹

<'일월오봉도'와 창덕궁에서 영감 받아>


건물 뒤편에는 축구장 절반 크기의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 오피스 건물에 딸린 정원으로는 이례적인 규모다. 각종 수목과 산책로가 있는 정원에 가면 시끌벅적한 도시로부터 유리된 휴식처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마치 구도심 속 창덕궁 후원에 간 것과 같은 느낌이다.


설계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센터필드 조경 설계 때 가장 많이 참고한 명소는 창덕궁이다. 조형물의 전체적인 콘셉트를 디자인한 JMA는 궁궐 전각을 중심으로 전면부에는 고관대작이 드나드는 광장이 있고 후면부에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후원이 있는 창덕궁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공개용지의 성격을 정했다. 센터필드 전면부 공개용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광장이 중심이고 후면부 공개용지는 창덕궁 후원과 같은 사적인 휴식 공간이다.


또 다른 영감의 원천은 옛 그림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다. 일월오봉도는 조선시대 궁궐 정전의 어좌 뒤편에 놓였던 병풍에 그려진 그림으로 5개의 산봉우리와 해·달·나무·폭포 등이 담겨 있다. 건축가들이 이 중 특히 주목한 것은 폭포다. 하늘에서 대지로 시원하게 떨어져 내리는 폭포를 형상화하기 위해 건축가는 건물 외벽을 수많은 수직 파이프(louver·루버)로 덮었다. 외벽을 3개의 면으로 분할해 덧대듯 겹쳐놓은 것 또한 그림 속 폭포를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건물을 설계한 디에이그룹과 JMA는 센터필드의 디자인을 한마디로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timeless design)’으로 정의한다. 창덕궁과 일월오봉도가 그렇듯 복잡한 것보다는 단순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시간이 흘러도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센터필드에는 현재 대기업·외국계 기업 등 유수의 기업들이 입주했거나 입주를 추진 중이다. 르네상스호텔 재건축을 통해 탄생한 센터필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강남의 또다른 명소로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