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 신사동의 한 주점에서 여자친구와 와인을 마시고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알코올 기운이 올라온 상태로 여자친구와 지하철역을 향해 걷다 A씨는 20대 여성 B씨 일행을 마주쳤다.
이후 A씨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편의점 앞에 있던 여성 두명의 얼굴을 발로 한 번씩 걷어찼다. 이어 20분 뒤에 또 다른 여성의 허리를 걷어찼고, 곧이어 택시를 기다리던 여성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던 여성과 길을 지나가던 또 다른 두 여성도 A씨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15분이란 짧은 시간 동안 A씨에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한 여성은 총 7명이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2단독 이동희 판사는 지난 1월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다. 일부 피해자들과 합의했으나, 범행 전에 적당한 대상을 물색하고 범행 후 빠른 속도로 도주해 죄질이 불량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A씨는 형량이 너무 높다며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에서 A씨는 “알코올 블랙아웃 상태로 범행 당시 만취해 기억이 안난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A씨 측은 “범행 당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서 소변을 보는 등 사물변별능력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느슨해진 상태에서 평소에 하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된다면 판사 재량으로 감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51부(고연금 곽태현 김찬년 부장판사)는 지난 5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폐쇄회로(CC)TV 영상에 A씨가 술에 취한 듯한 걸음걸이가 찍혔으나 피해자를 발로 찬 다음 안정적으로 착지한 점, 피해자를 공격한 뒤 즉각 피해자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간 점, 피해자 7명이 모두 젊은 여성으로 특정된 점 등으로 보아 사물 변별 능력이나 의사 결정 능력이 결여돼 있지는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5개월간 수감생활을 하며 반성하고, 이 사건 외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것은 유리하게 참작할 만 하다”면서도 “'묻지마 범죄'의 위험성이 모여 사회 불신이 심화되고 안전보장을 위한 국가 재원이 더 많이 지출돼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하며 항소를 기각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