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동북아시아 지역과 미주 지역을 잇는 컨테이너 해상운송 서비스에서 공급 차질이 발생해 해상 운임이 급등했다. 이로 인해 머스크, CMA-CGM 등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의 실적이 가파르게 개선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 해운 기업인 HMM도 그렇다. 이미 폭등한 이 회사의 주가가 어디까지 갈지 투자자들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는 우리나라 해운업이 대단한 호황을 누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 10년을 돌아보면 얘기가 다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 시장은 급격한 불황을 겪었다. 특히 원양 컨테이너 시장은 불황의 골이 깊어지며 급격히 재편됐다. 대형 선사들 간의 인수합병(M&A)이 이뤄지고 글로벌 상위 20개 선사 가운데 현재 단 8개 선사만 살아남았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1위 컨테이너 선사였던 한진해운은 불황과 세계시장 개편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했다. 다행히 우리나라 주요 교역 지역인 동남아·중국·일본 등을 주로 오가는 해운 회사들은 불황에도 비용 절감, 공동 운항 등의 노력으로 피해를 줄여왔다. 그 결과 높지 않은 운임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입 교역을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남아 일부 노선에서는 적자 운송이 심각했다. 지금도 북미 컨테이너 노선과 달리 동남아 노선의 운임은 크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동남아 항로에 취항하는 12개 우리 국적 선사와 11개 외국 선사에 대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며 약 8,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심사 보고서는 2018년 9월 조사에 착수해 거의 3년 만에 나왔다. 오래 걸려 나온 보고서이므로 나름대로 논리적 근거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업계의 입장과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첫째, 선사들 간의 담합이 의심된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던 화주 단체가 신고를 자진 철회하고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탄원서까지 냈음에도 조사를 지속한 것은 출발부터 무리였다는 비판이 있다.
둘째, 외국 선사에 200억 원에서 900억 원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에 외교적인 마찰과 아울러 해당 국가에 입항하는 우리나라 선사에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다.
셋째, 해운업은 대규모 자본이 투자된 선박을 활용해 운송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큰 재무적인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어느 정도 선사들 간 공동행위를 인정한다. 우리나라도 해운법에 화주와의 협의, 사전 신고 등의 조건하에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도외시하고 공정위가 독점 금지 차원에서 과징금 부과 결정을 한 것은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무리한 법 집행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재무적으로 부실해진 해운을 살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금융 당국의 논리로 한진해운이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2016년의 뼈아픈 기억이 소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으로 우리 해운 산업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는 시점이다. 공정위의 방침은 중소 선사에 대한 제2한진해운 사태의 단초가 될 수 있다. 해운업이 다시 무너지면 수출입 화물 운송 비용이 증가해 수출입 기업과 국익에 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독점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 관점에서 해운업을 바라봐야 한다. 공정위가 균형 있는 시각으로 전환해 최적의 해법을 제시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