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회장의 '기부 플렉스'…카이스트에 준 美건물 공개

/서울경제 DB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766억을 기부한 이수영(85) 광원산업 회장이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의 일상을 공개했다.


이 회장은 지난 6일 방송된 TV조선 예능프로그램 '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에서 한 건물을 부동산 투자 시작점이라고 소개하며 "미국 연방 정부가 내게 임대료로 한 달에 3만2,300달러(약 3,650만원)씩 납부했다. 그러니까 내가 돈더미에 올라앉았다"고 말했다. 해당 건물은 이 회장이 카이스트에 기부한 건물이다.



/TV조선 캡처

그는 '카이스트 개교 이래 최고 기부액 납부자'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지난 2012년 80억원과 2016년 10억원 상당의 미국 부동산을 KAIST에 유증(遺贈·유언을 통한 재산기부) 하기로 한 뒤 실제 기부했고 지난해 676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쾌척해 과학인재 양성에 내놓기로 한 금액은 총 766억원에 달한다. 이 회장은 “KAIST에서 국내 최초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카이스트는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는 한편, 국내 최초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도록 학문 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TV조선 캡처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서울에서 4남4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법고시에 한 번 낙방한 뒤 ‘골방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심신이 피폐해졌다’며 기자의 길을 택한다. 1963년 서울신문 견습기자 4개월만에 회사를 나와 다음해 현대경제일보(현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가 4년간 근무한 뒤 1969년 서울경제신문 경력기자로 입사해 재계 등을 출입하며 맹활약한다.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노조 설립에 적극 나섰다는 오해를 받아 강제해직될 때까지 12년 가까이 서울경제신문에서 다양한 재계·금융계 인사들과 인연을 맺는다. 이 과정에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등 다양한 재계인사들을 취재했다.


그는 서울경제 기자를 하던 1971년 농업과 공업이 고루 발전해야 한다는 ‘농공병진(農工竝進)’ 에 공감하던 차에 목장을 하던 언론사 선배로부터 돼지 두 마리를 선물받은 것을 시작으로 축산업에 뛰어들게 된다. 경기도 안양에 광원목장을 설립해 밤과 주말에 돼지와 소를 키웠고 나중에는 돼지 1,000여마리, 소 15마리 규모까지 키웠다.


이 과정에서 돼지파동과 우유파동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으나 불굴의 굳센 의지와 서울법대 동창들의 도움을 받아 이겨냈다. 1980년 해직 뒤에는 목장 하천에서 모래채취업까지 하다가 이후 부동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게 된다.


1988년 부동산 전문기업인 광원산업을 창업해 여의도백화점(지하4층~지상14층)의 한 층을 매입했고 이후 전체 건물의 3분의1 지분까지 넓힌다. 이 과정에서 건물 관리비라는 이권을 노린 조직폭력배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한 달간 지방으로 피신하기도 했으나 결국 당당히 이겨냈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신장암에 걸리기도 했으나 수술 후 완쾌될 수 있었다.


KAIST에 대한 기부는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독신이던 그는 2000년 미국 건물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매매계약서에 피상속인을 쓰지 않으면 사후 국고로 귀속된다는 것을 알고 고민한다. 이 때 우연히 서남표 당시 KAIST 총장이 TV에서 “국가발전에 과학기술의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해서 2012년 KAIST로의 80억원 유증계약을 시작으로 이듬해 KAIST 발전재단 이사장을 맡고 오늘날 ‘이수영 과학교육재단’ 설립추진을 통한 본격적인 과학인재 양성으로 이어졌다.


그는 2018년 초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그해 서울법대 동기동창과 부부로서의 인연을 맺었다. 그는 초혼이었고 남편(검사 출신 김창홍 변호사)은 상처한 상태였다. 남편은 ‘이왕 마음 먹었으면 빨리 하라’며 기부를 독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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