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대학 '도미노 폐교' 위기…"과감히 솎아내되 퇴로 열어줘야"

[미래 인재 육성 교육이 없다-<중>무너지는 상아탑을 세워라]
출산율 저하에 학령인구 급감
올 입학자 20년만에 50만 붕괴
지방 넘어 수도권 대학들도 비상
사학법인 잔여재산 일부귀속 등
당근책으로 부실대학 해산 유도
특성화 대학 양성에 집중 투자를



지방대학 관계자들이 지난 5월 6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에서 열린 '지방대학 위기 정부 대책 및 고등교육 정책 대전환 요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고구려대는 2017~2020학년도까지 4년간 학생 수를 조작하다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됐다. 입학 예정자와 재학생 총 480여 명이 등록금을 완납하지 않았는데도 학교에 다닌다고 허위 등록을 한 것은 물론 입학원서에 지원 학과조차 쓰지 않은 학생을 합격시켜 신입생 충원율에 포함했다. 충원율을 유지해야 정부에서 학자금대출·장학금 등을 지원받을 수 있어 무리수를 감행했다. 파행 운영을 하는 지방대학은 한두 곳이 아니다. 전북 전주시의 한 대학은 올 초 “수능 성적도 안 보고 입학생 모두에게 장학금 50만 원을 지급하겠다”며 신입생 ‘구애’에 나서기도 했다. 교육받을 학생이 부족하니 창의 인재 육성은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국내 대학이 위기를 맞은 것은 비단 학령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재정난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사태 이후 확인된 것처럼 대학 자체 경쟁력의 한계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미래 산업 인재 양성의 보루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한계 대학을 과감하게 구조 조정하는 동시에 특화 대학 육성 등 체질 개선을 유도해 대학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락하는 대학…“벚꽃 피는 순서가 아닌 동시다발 위기”=대학들이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은 것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올해 4년제 대학 및 전문대학 총 입학자는 48만 7,532명으로 전년 대비 3만 6,728명 급감했다. 입학자가 50만 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지난 199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반면 대학 신입생 정원은 50만 명이 넘어 지방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미달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경남 대학의 올해 신입생 충원율은 85%로 전년보다 10.4%포인트 감소했다. 전북·강원의 충원율은 89.3%, 89.2%로 전년보다 각각 10.3%포인트, 10.1%포인트 줄었다. 정원 미달에 따른 등록금 수입 감소로 경영이 악화하면 교수들의 연구비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지난 13년간 등록금 동결, 코로나19로 인한 유학생, 투자 유치 감소로 재정 악화를 호소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 한 수도권 대학 총장은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은 옛말이고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위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 개혁 번번이 실패…저항에 밀리면 끝=1990년대부터 저출산 추세로 학령인구 감소가 예상되면서 대학 구조 조정 및 정원 감축은 역대 정부의 교육 개혁 과제였다. 노무현 정부는 국립대 통폐합과 정원 감축에 초점을 맞췄다. 이명박 정부는 부실 사립대 퇴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박근혜 정부는 모든 대학을 대상으로 정원을 감축하는 포괄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학 구조 조정이 없었다는 평가다. 인위적 감축 대신 대학 자율에 맡기다 보니 학령인구 감소 추세 대비 대학 정원 감축은 더디기만 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157개 사립대학의 정원 감축 규모는 2,945명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만 18세 학령인구는 61만여 명에서 51만여 명으로 급감했다. 폐교 절차를 밟은 대학은 2000년 이후 고작 18곳에 불과하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그동안 구조 조정의 속도가 지지부진해 2024학년도 쯤에는 50여 개 대학이 한꺼번에 폐교에 직면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더딘 구조 조정이 사회적 혼란을 키울까 염려된다”고 밝혔다.


위기를 느낀 교육부는 5월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방안’을 발표하며 부실 대학 퇴출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대학의 반발이 거세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교육부가 퇴출에 방점을 찍는 정책을 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사립대 교수는 “‘낙인 효과’를 우려해 자구 노력을 고려해달라는 대학들이 많아 부실 대학 퇴출 정책이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핀셋 구조 조정+특화 대학 육성, 투트랙 해법 모색해야=대학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한계 대학에 대한 과감한 구조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교육계의 중론이다. 구성원 간 충분한 논의를 통해 미달 학과 정원을 줄이고 재정 부실 대학은 과감히 퇴출해 학령인구 감소 추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지금의 대학은 학생 수 100만 시대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학령인구가 20만 명대까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넘쳐 나는 대학에 대한 구조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사학법인 해산 과정에서 설립자에게 잔여재산의 일부 귀속을 허용하는 등 자발적 퇴출 통로를 만들어주는 제도 개선은 병행돼야 한다.


구조 조정을 거쳐 경쟁력을 확보한 대학에 대해서는 과감한 재정 지원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4차 산업 등 미래 산업 연구 중심 대학, 평생 직업교육 대학, 소수의 학생만 뽑아 전문적 훈련을 하는 대학 등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생존 플랜을 내놓는 곳은 특성화 대학으로 키워 인재 양성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황홍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대학 혁신 지원 방안에는 각 지역별 특성화 대학 육성·지원제도가 빠졌다”며 “혁신도시를 개발하듯 재정 투입을 통해 지방대 경쟁력을 키워 학생들이 찾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유휴 자산 활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대학에 등록금 자율 결정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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