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생 서른여섯살. 헌정사상 첫 30대 정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3일로 취임 한 달을 맞았습니다. 이 대표의 첫 추진계획 ‘토론배틀’은 흥행대박을 기록했고, 당 지지율이 상승한데 이어 당원수도 급증세를 보이면서 대표직에 안착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따릉이’를 타고 출근하고, 취임 첫날 광주를 방문한 이 대표는 역시 ‘따릉이’를 타고 와서 서울경제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파격을 선보인데다 성과가 뚜렷한 만큼 당내에선 ‘제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경쟁자인 더불어민주당을 ‘제법’긴장시킨 한 달이었습니다. ‘0선’이라는 한계에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포함해 유력 야권 대선주자들을 잇따라 만나 정권교체를 위한 당내 결속을 다진 점도 주목할 점입니다.
12일엔 송영길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도 있었습니다. 밥만 먹고 헤어진게 아니라 굵직한 합의안도 내놨습니다. △지구당 부활 △소상공인 지원 두텁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 여야정협의체 △재외국민투표방법 개선 △위성정당 문제 해결을 위해 연동형비례대표제 개선 △ 양당대표 TV토론회 정례화 △양당대표 식사 회동 정례화 등입니다. 문재인 정부들어 여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 합의안을 내놨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코로나19 4차 대유행 상황에서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의하자 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각당에서도 반발과 혼란이 이어졌습니다.
이날 두 대표는 서울 여의도 만찬 회동을 통해 추가경정예산안으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지급 시기는 방역 상황을 고려해 추후 결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민주당 고용진, 국민의힘 황보승희 수석대변인이 오후 8시께 브리핑에서 밝혔습니다. 그리고 100분 뒤 황보 수석대변인은 “오늘 합의 내용은 손실을 본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대상과 보상 범위를 넓히고 두텁게 충분히 지원하는 데 우선적으로 추경 재원을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브리핑 내용을 정정했습니다. 이어 “그 후 만약 남는 재원이 있을 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 범위를 소득 하위 80%에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까지 포함해 방역상황을 고려해 필요 여부를 검토하자는 취지로 합의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사실상 번복을 한 셈입니다.
이날 국민의힘 반응은 이준석 대표 한달을 기념하기에는 서운한 날선 비판들로 채워졌습니다. 대선출마를 선언한 윤희숙 의원은 “민주적 당운영을 약속해놓고, 당의 철학까지 뒤집은 제왕이 되렵니까”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다른 당직자는 “당에서 선별지급을 말해왔는데 대표가 갑자기 저러니깐 당황스럽다”며 “그렇다고 대표 체면도 있는데 뒤집을 수도 없고 수습을 하려고 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조해진 의원은 “이준석 대표가 송영길 대표와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에 합으했다고 보도했다. 사실이라면 황당한 일이다”고 지적했습니다. ‘어린 당 대표’의 ‘순진한 합의’라는 인식이 전제된 발언이라면 과한 해석일까요. 극렬하게 반대하는 당내 여론에 이 대표도 한 발 물러서며 수습에 나선 것인데 사실 이같은 일은 이번뿐이 아닙니다.
이 대표는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해 당내에서도 적지 않은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이 대표는 지난 6일 “여가부 같은 것들이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안 좋은 방식이다. 나중에 우리 대통령 후보가 되실 분이 있으면 폐지 공약은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며 여가부 폐지 주장에 불을 지폈다가 조수진·윤희숙 의원 등 당내 여성의원들이 공개 반박하면서 ‘작은 정부론’의 일환이라며 해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여가부 폐지에 이어 이 대표는 ‘작은 정부론’ 연장선상에서 통일부 폐지론까지 꺼내들었습니다. 이에 권영세 의원은 “이 정부 통일부가 한심한 일만 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없애는 건 아니다. 우리가 집권해서 제대로 하면 된다”고 쏘아붙였고, 조수진 의원도 “통일부를 실질적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남북이 평화공존을 다지고 통일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데 어떻게 활용할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가세했습니다. 다른 중진 의원은 “설익은 주장이 당 대표의 목소리로 나가고, 당내에서 이견이 뒤따르는 모습은 좋지 않다"며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조해진 의원도 “통일부 폐지 등 정부 조직개편 문제도 대선 예비후보들이 공약차원에서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당 대표가 말하는 것은 당의 공식 입장 또는 당론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의미가 다르다”며 “이 대표가 당내 소통에 좀 더 노력해야 하고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앞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나 황교안 대표 시절 당내 크고 작은 불만이 있었지만 당대표가 결심하고 추진하면 따르는 게 국민의힘의 모습이었습니다. 격세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말 김종인 위원장이 ‘경제3법(상법 일부 개정안·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금융복합기업집단법 제정안)’을 주창하자 당 정체성과 다르다면서도 본회의에서 기권을 하거나 찬성표를 던진 게 대다수 국민의힘이었습니다. 황교안 대표 시절에도 이른바 태극기부대 집회에 함께하며 장외투쟁을 이어가는 데 적잖케 불만을 가지면서도 함께 거리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었던 것도 국민의힘이었습니다.
설익은 정책과 논쟁을 불러오는 발언은 취임 한달을 맞은 이 대표가 주의할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 대표 결정을 뒤집어버리는 ‘노회한’ 의원들의 결기가 김종인·황교안 시대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이 대표가 도전해야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 대표도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9일 발표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신뢰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국민의힘은 32%, 민주당은 31%로 나타났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2016년 10월 둘째주 이후 해당 여론조사회사(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서 민주당 지지율을 국민의힘이 역전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 대표가 취임 한달 만에 만든 성과입니다.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탄핵은 정당했다”고 말하고 민주당의 텃밭 광주에서 “저에게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은 단 한번도 광주사태였던 적이 없고 폭동이었던 적이 없다”고 당당히 밝혔던 ‘이준석 스타일’의 성과인 겁니다.
당내 여론에 흔들려 전국민재난지원금을 여야대표가 합의해 놓고 100분만에 번복해 버려서는 이런 이 대표 스타일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취임 한달은 피로감이 생기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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