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그들을 키운 건 8할이 문재인 정부다

정민정 논설위원
野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尹·崔·金
모두 소신지키려 文정부 떠난 이들
극단적 진영논리·권력사유화가 빚은
법치훼손·민주주의 퇴행 방증일 것

정민정 논설위원

무림의 호걸들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에 나서고 있다. 2022년 3월 대선을 8개월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야권 잠룡들 얘기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역심(?)’을 품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현재 야권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년 전 그에게 임명장을 주며 “살아 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조국 사건’을 계기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2018년 1월 최재형 전 감사원장 임명 당시 청와대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익 보호, 국민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온 법조인”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감사 결과를 발표한 후 여권의 공격을 받게 되자 임기를 6개월 남겨 놓고 감사원을 떠났다. 문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전 부총리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소신 발언을 하는 등 정권 핵심부와 충돌을 빚다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들 모두 범야권 진영에서 대선 주자로 뛸 태세다.


여권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윤 전 총장과 지지율 1위를 다투고 있지만, 그 역시 친문 적통이 아닌 터라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여권 후보들조차 문 대통령이 아닌 ‘노무현 마케팅’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년이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퇴행의 역사’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상 지난 4년을 되돌아보면 ‘조국의 시간’과 ‘추미애의 깃발’로 점철된 분열과 증오의 시간이었다. 정치는 실패했고, 법치는 훼손됐으며, 민주주의는 위태로워졌다. 극단적 진영 논리, 권력의 사유화, 파괴적 포퓰리즘이 침범한 자리에서 이성적 논쟁은 멈췄고, 대화와 타협은 사라졌으며, 증오와 폭력의 광기가 분출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법에 근거를 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할 때 비로소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사법 개혁을 내세워 법치 파괴로 치달았으니 법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이들이, 나라의 백년대계를 고심했던 이들이 ‘역심(?)’을 품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시인 서정주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 듯 이들을 키운 것도 8할이 문재인 정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 찍으며 대선 레이스에서 도태시키려는 여권의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배우자를 겨냥한 ‘쥴리 논란’은 마타도어가 대선판을 더럽힐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갖게 한다. 조만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쥴리의 친구’가 출연할 것 같다는 모 의원의 예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겨레 출신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방송 기자가 경찰을 사칭한 것과 관련해 “제 나이 또래(기자)에서는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언론의 취재 윤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했다가 뒤늦게 사과했다. ‘기자가 수사권이 없으니까 경찰을 사칭한 것으로 보인다’는 궤변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현 정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고백하고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12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천안함 전사자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지난해 총선 참패 이후 올 4월 재보궐선거를 거치며 ‘탄핵의 강’을 건넜다. 김종인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5·18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었고 지난해 말에는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집권 여당은 어떠한가. 국민의 일상을 어지럽히고 나라를 분열시킨 ‘조국의 강’을 여전히 건너지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 아니 그 이후까지 ‘조국의 강’은 한반도의 반쪽마저 반으로 가르고 국민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지도 모른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 속을 지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는 것이 정치가의 책무”라고 했다. 중원의 패자(覇者)가 되기 위해 대혈투를 예고한 잠룡들에게도, ‘조국의 강’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여당에도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않고 잡아채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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