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佛이 약탈" 빅토르 위고의 글 새겨…후손 이름으로 파괴자 비판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17-1> '황제의 여름궁전' 원명원
서양루 폐허에 흉상과 함께 전시
중국 배외운동 새로운 상징으로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원명원 파괴를 고발하는 빅토르 위고의 흉상이 서양루 구역에 세워져 있다.

“두 강도가 여름 궁전에 침입했다. 하나는 약탈을 하고 다른 하나는 불을 질렀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그의 ‘중국여행’이라는 책에서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1860년 베이징 원명원 약탈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다. 중국 원명원 당국은 원명원 서양루의 폐허로 남은 돌무더기 사이에 위고의 흉상과 함께 그의 글을 새긴 석판을 가져다 놓았다. 중국에서 원명원 파괴에 대해 반응하는 방식이다. 파괴자 후손의 이름으로 파괴자를 비난한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오늘의 중국은 12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열강이 대포로 중국의 문을 열 수 있는 시대는 영영 지났다”고 주장했다. 미국 등 서방이 신장위구르·홍콩 등의 인권 문제로 중국에 대해 제재를 한 데 대한 반응이다. 여기서 언급된 120년 전은 1901년으로, 의화단의 난을 계기로 미국·영국 등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공한 직후 불평등조약인 신축조약이 맺어진 시기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으로 부서졌다가 일부 보수된 원명원은 이때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원명원이 새로운 중국 배외운동의 상징이 되는 셈이다. 원명원의 서양루 폐허를 보고 있으면 중국인들의 분노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과거 중국이 세계의 변화를 알지 못하고 자만하다 결국 피해를 당한 제반 사정은 망각하고 있다. 제2차 아편전쟁이나 의화단의 난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무시하는 것이다. 지금도 신장위구르·홍콩 등 인권침해 과오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미국 등 서방과의 대립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또 다른 충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마카오의 카지노 대부였던 고(故) 스탠리 호는 소더비 경매에서 6,900만 달러에 구입한 원명원 ‘말머리 동상’을 지난 2019년 말 중국 정부에 기증했다. 원명원의 서양루에는 12개의 십이지신 동상이 있었는데 제2차 아편전쟁 때 약탈됐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치욕의 세기를 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글·사진(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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