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용] 내가 농부가 될 상인가

※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강감찬 도시농업센터 1층 전시온실.

보고, 만지고, 맡고, 맛보는 4樂!

에디터에게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조카가 있는데요. 생애 처음으로 맞이할 여름 방학에 뭔가 색다른 체험학습을 해주고 싶었답니다. 코로나로 놀이동산이나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힌 에디터는 강감찬 도시농업센터가 최근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흙이나 식물 같은 자연을 접하기 쉽지 않잖아요. 흙을 직접 만지고 식물을 심으면 아이들의 심리·정서적 안정감도 높아지는 효과는 말해 뭐하겠어요. 실제 건국대 농축대학원이 초등학교 4학년 총 117명을 대상으로 총 12회에 걸쳐 도시농업 프로그램으로 주로 텃밭 만들기 등 원예활동을 진행했는데요. 놀랍게도 아이들의 자기효능감, 회복탄력성, 정서지능이 모두 향상됐다고 해요. 도시농업을 돕는 센터는 전국적으로 서울 8개소, 경기 10개소, 부산 7개소, 인천 2개소, 경북 2개소, 경남 1개소, 울산 2개소, 광주 1개소, 충북 1개소, 충남1개소, 강원 1개소 등 총 36개 기관이 운영 중이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가보세요.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강감찬 도시농업센터 전경.

‘작은 더위’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를 맞은 지난 7일 관악구 강감찬 도시농업센터. 전날 소나기가 퍼부어서 그런지 습한 날씨 탓에 불쾌지수가 높은 날이었는데요. 멀리서 본 센터는 아담한 식물원 느낌! 작은 언덕을 지나 올라보니 강렬한 태양빛에 녹음이 더 푸르른 느낌이라 마음속까지 시원해졌어요.


처음 들어가자마자 저를 맞아준 것은 녹색 물결 속에 따뜻함을 담당하고 있던 오렌지였는데요. 도심에서 백화점이나 마트가 아닌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렌지라서 그런지 뭔가 더 신선해 보였어요. 조카를 위해 갔다가 신기해서 이것저것 보느라 에디터의 눈이 더 호강했네요. 센터에는 오렌지, 망고, 바나나 등 주로 남쪽 여행을 가야 볼 수 있는 과일들이 자라고 있어요. 센터 관계자는 어린이들이 별생각 없이 왔다가 나무에 달린 과일을 보고 진짜 신기해하고 즐거워한다고 귀띔했어요. 안구건조증을 달고 사는 에디터가 즐겨먹는 블루배리 나무도 처음 봤는데요. 뭔가 모를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로즈마리·민트·백리향 등이 해충을 쫓기 위해 심어져 있다.

센터는 로즈마리·민트·백리향 등 싱그러운 향기로 과일의 천적 해충을 퇴치하는 100% 친환경 농법을 쓰고 있어요. 향기가 백리까지 간다는 백리향을 직접 만져보니 마스크 속까지 은은한 향기가 전달되네요.


잿빛 도심에 지친 시각과 후각이 호강을 했으니 이제 촉각과 미각에도 선물을 줘볼까요.


왕초보 도시농부 훈련소


센터에서 진행하는 ‘별미 디저트’ 프로그램.

센터는 지속 가능한 도시농업을 돕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마침 에디터가 찾은 날에는 안연숙 도시농업관리사님이 진행하는 ‘별미 디저트’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었는데요. 왜 갑자기 농업센터에서 요리 교실이냐구요? 내 손으로 직접 친환경 작물을 키워 맛있게 먹고 싶은 욕구는 도시농업을 하는 큰 이유잖아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면 더 열심히, 계속 농사를 짓고 싶겠죠?


관리사님의 친절한 설명 덕에 요리를 잘 못하는 에디터도 떡이란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네요. 명절에 할머니가 해주던 떡을 먹어만 봤는데 직접 만들어 볼 기회는 없었거든요. 별미디저트 프로그램에 참석한 이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해요.


꽃을 직접 가꾸고 있다는 도시농부 심혜지(33)씨는 “천연재료로 요리를 만들 수 있어 좋았다”며 “시간이 되면 앞으로도 더 참여할 생각”이라고 소감을 밝혔어요. 다만 아직 센터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로그램이 통합적으로 운용되진 못한 것 같아 그 부분은 좀 아쉬워요.



‘별미 디저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석자들이 도시농업관리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주부 이우진씨는 “작물을 심고 수확하고 요리까지 할 수 있는 통합 프로그램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런 프로그램이 더 체계적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아쉬움도 표했어요.


센터에는 별미디저트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도시농부가 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현실적인 제약이 많아서 포기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악취 문제나 텃밭을 구할 공간 마련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에요. 이런 왕초보 도시농부들에게 이곳 센터는 농사 입문하기 딱 좋은 곳 같아요.


단돈 8,000원에 상자텃밭을 구입한 뒤 숙달된 도시농업관리사에게 조립방법과 작물재배방법을 배울 수 있는 ‘꿈꾸는 상자 텃밭’. 이건 나중에 조카랑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무장애 텃밭도 있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도 직접 흙을 만지고 농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도 있어요. 흙을 만진 장애인들은 흙에 대한 감촉을 처음 느껴봤다며 굉장히 감격해한다고 해요.



1년 장기 프로젝트 ‘볍씨의 여행’ 참여자들이 심은 모가 자라고 있다.

아! 그리고 1년에 딱 한 번의 기회밖에 없는 1년 장기프로젝트 ‘볍씨의 여행’도 있는데. 이건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어요. 모내기 행사는 지난달 끝나서 논에 파릇파릇한 모들이 예쁘게 자라고 있었답니다. 모내기는 놓쳤지만 수확 행사가 하반기에 있다고 하니 이번엔 놓치지 않을 거예요.



토종 씨앗 도서관에 전시된 고들빼기 씨앗.

토종 씨앗 도서관도 센터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인데요. 김장철 즐겨 먹던 고들빼기 씨를 보신 적 있나요? 전 처음 봤는데 생각지도 못 한 모양새에 적잖이 놀랐네요. 저도 몰랐는데 가격 경쟁력에 외면 받던 우리 토종 씨앗이 해마다 200여 종 넘게 사라지고 있다고 해요. 씨앗도서관은 조선 전기의 문신 강희맹이 1492년 펴낸 농서 ‘금양잡록’을 바탕으로 식량, 원예, 약용 작물 등 약 250종의 씨앗을 전시 중이에요. 센터는 전시한 종자를 주민에게 나눠주고 수확 후 반납 받는 종자 대출제도를 운용할 계획이라고 하니 토종 씨앗 지키기에 함께 동참해 보는 것도 보람찬 일일 것 같네요.


도시농업이 사회 안전망 역할도 한다고?


센터에 있는 텃밭.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면서 내 손으로 직접 작물을 키워서 먹는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도시농업은 그 자체로 녹지공간을 조성하기 때문에 대기오염에 좋고 열섬현상 등을 완화하는 기능을 해요. 무엇보다 도시 농업이 활성화 되면 공동체 유대감이 단단해져 각종 사회문제 해결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쳐요. 이런 많은 장점 때문에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도시농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어요. 우리나라도 지난 2010년 구도심 낙후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이 커지면서 도시농업참여자가 늘었어요.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15만3,000명에 불과했던 도시농업 참여자수는 지난해 184만8,000명으로 무려 12배 가량 껑충 늘었어요. 텃밭면적도 같은 기간 104㏊에서 1,060㏊로 10배가량 폭증! 다만 아쉬운 점은 도시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요. 우리나라의 도시농업 대부분은 주말농장에서 보내는 여가생활이나 개인의 취미 차원에 머물고 있거든요.



미국 청소년들이 청소년농장에서 수확된 농작물을 판매하고 있다./시카고 보타닉 가든 홈페이지 캡처.

반면 선진국들은 도시농업을 통한 공동체 회복에 초점을 맞춰 지속 가능한 성장모델로 키워가고 있어요.


미국은 도시농업을 사회를 치유하는 훌륭한 약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국가예요. 미국 비영리단체들은 소득이 낮아 안전한 농산물을 사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프로젝트를 주도하는데요. ‘Wind City Havest Youth Farm’은 그 대표적 사례예요. 시카고의 빈민층 청소년들이 농산물의 재배부터 판매까지 참여해 지역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청소년들은 봄과 가을에 주당 4시간, 여름에는 20시간을 근무하며 급료를 받는데 이후 감독 등 정규직으로 채용까지 돼 사회 안전망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죠. 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여전한 독일은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첨병으로 도시농업을 활용하고 있어요. 베를린 장벽이 있던 마우어파크에 조성된 ‘장벽 정원’은 다문화와 지역사회의 협력을 내세우고 있어요. 정원은 지역민들에게 항시 개방돼 있는데 각기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농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류한대요.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오해의 벽은 소통하면서 허물어지니까요.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형 도시농업’ 등 지속 가능한 도시농업을 위한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농업에 참여해 더 푸른 자연과 인간미 넘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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