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의 ‘댓글 조작 공모’ 실형 판결 등 정부와 여당에 직접적인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청와대와 문 대통령은 청해부대 집단감염과 관련해 ‘후속 조치가 모두 끝난 뒤’ 언젠가 사과할 수도 있다고 해명하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첫 확진자 발생 8일만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첫 사과 입장을 내놓았다. 반면 정권 정통성에 흠집을 낸 김 전 지사 판결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철저하게 선을 긋는 모양새다. 임기 말임에도 40%를 넘을 정도로 지지율이 확고한 만큼 김 전 지사 악재까지는 아직 큰 위협으로 느끼지는 않는 분위기이다. 문 대통령은 당분간 김 전 지사 사건과 거리를 두면서 북한 대화, 방역 강화, 백신 접종, 민생 경제 회복 등에 추가적인 메시지를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文 “軍, 안이했다”…野 “직접 사과하라”
이달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4,400톤급) 부대원 301명 중 무려 271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채 귀환한 소식은 국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코로나19 백신이 미비한 상태에서 안보를 책임질 장병들이 순식간에 집단감염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에 지난 20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화상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애가 타는 부모님들에게 상황을 잘 알려서 근심을 덜어줘야 할 것”이라며 “신속하게 군 수송기를 보내 전원 귀국 조치하는 등 우리 군이 나름대로 대응했지만 국민의 눈에는 부족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치료 등 조치에 만전을 기하고 다른 해외파병 군부대까지 다시 한 번 살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날 문 대통령 발언에는 국민과 장병들에 대한 사과는 포함되지 않았다. 청해부대에서 6명의 장병이 첫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15일에도 문 대통령은 별도의 사과 없이 “공중급유수송기를 급파해 방역·의료인력, 치료장비 등을 최대한 신속하게 현지에 투입하라”는 지시만 내렸다. 문 대통령은 21일에도 백신 예약시스템 오류·마비와 관련해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의 위상에 걸맞지 않는다”며 청와대 참모들을 질책했다.
대신 김부겸 국무총리가 20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 장병들의 건강을 세심히 챙기지 못해 대단히 송구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같은 날 브리핑을 갖고 “국방부 장관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를 두고 군 최고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해야 한다며 즉각 반발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0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방력을 무력화시키고 국민을 백신 보릿고개 상황에 몰아놓고서도 문 대통령은 북한에 백신 보낼 생각에만 여념이 없는 모습”이라며 “이제라도 국방부 장관, 합참의장을 즉각 경질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와 직접 회견하면서 총체적 방역 실패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것이 도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21일에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대통령 본인이 책임져야 할 중대 사안에 대해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으니 지도자 자격조차 없다”며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박진 의원도 “정부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지 않고 국방부 장관을 질타하는 모습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지적했다.
박수현 “이미 사과한 마음”→文, 8일만에 SNS서 “가족들에게 송구”
야당의 이 같은 공세에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복심’을 자처하듯 한 동안 거의 매일 방송에 출연하며 문 대통령의 마음을 대신 전했다.
박 수석은 20일 연합뉴스TV에 출연해 “보고를 받고 대통령이 바로 공중급유수송기를 급파하라고 지시했다”며 “문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예측하지 못한 잘못을 ‘국방부가 안이했다’고 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께서 겸허하게 이 비판을 수용하고 있다는 말씀으로 들어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이어 “청해부대 집단 감염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부모님에게, 장병들에게 정말 드릴 말씀이 없고 너무나 송구한 일”이라면서도 문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지 않은 것을 두고는 “사과만 드린다고 끝낼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 수석은 “모든 문제를 처리 하는 데 정부가 모든 힘을 모으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며 “국군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말은 부모님들이 안심하시는 모든 조치가 다 끝난 뒤에 종합적으로 기회가 있는지 판단을 해 볼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수석은 21일에도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군이 안이했다고 한 것은 대통령이 스스로 겸허히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표시 아니겠느냐”며 “대통령은 부모님들이 안심하실 수 있도록 장병들을 완전히 잘 치료하고 다른 부대에 이런 일이 없는지 살피고 다 대책을 세운 이후에 필요하다면 (사과의) 말을 할 시간이 따로 있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수석은 그러면서 “서욱 국방부 장관이 대국민 사과를 한 날 대통령이 연거푸 사과를 하는 게 형식상 어떨까 모르겠다”며 “대통령이 이미 국민께 사과드리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고 질책의 말은 본인 스스로에게 다짐한 말”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박 수석의 ‘고군분투(?)’에도 비판 여론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첫 확진자 발생 8일 만인 23일에야 결국 육성이 아닌 SNS로 사과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해부대 부대원들이 건강하게 임무 수행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며 “걱정하실 가족들에게도 송구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어 “장병들도 힘을 내시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사과의 대상은 ‘모든 국민’이 아닌 부대원과 가족들에 한정됐다.
野, 김경수 ‘댓글 조작’ 징역 2년에도 “文 입장 밝히라”
청해부대 집단감염과 함께 대표적 ‘친문’ 정치인으로 꼽히는 김경수 전 지사의 실형 확정 판결도 정부에는 큰 악재가 됐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1일 김 전 지사의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전 지사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문 대통령의 당선을 도울 목적으로 일명 ‘드루킹’으로 불리는 김동원씨 일당과 공모해 2016년 11월부터 자동화 프로그램(매크로)인 ‘킹크랩’으로 댓글 여론을 조작한 혐의(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를 받았다. 2017년 김씨와 지방선거까지 댓글 조작을 계속하기로 하고 김씨 측에게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도 있었다. 김 전 지사 측은 상고심에서 김 전 지사가 킹크랩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센다이 총영사직 제안 혐의에만 무죄가 인정됐다.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도 보석 신분을 유지하면서 도정 활동을 계속했던 김 전 지사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결국 3년만에 직을 내려놓게 됐다. 형 집행을 기간을 포함하면 앞으로 7년간 각종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됐다. 김 전 지사는 26일 교도소에 재수감된다.
야권 인사들은 이에 대해서도 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공범 여부 조사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김 전 지사의 혐의가 자신의 선거 캠프가 아닌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이번 판결을 현 정권의 정통성을 흔들 수도 있는 사안으로 본 것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1일 “대통령의 임기를 다 마친 이 시점에야 겨우 확정판결이 났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민주당과 문 대통령은 허위 가짜 뉴스로 선거 결과를 뒤집었는지 입장을 밝히고 정중하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정원 댓글 사건’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 규모의 여론 조작, 선거 공작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현 정권의 정통성에 근본적이고 심각한 하자가 있음이 사법부 판결로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실을 방문해 “김 전 지사가 누구를 위해서 그런 일을 했는지 온 국민이 다 안다”며 “여론조작의 최종적 수혜자라고 할 수 있는 문 대통령이 지금까지 아무 말씀도 안 하고 있다.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직격했다.
靑 “김경수엔 입장 없다”…與 “대선 불복은 촛불 시민 모욕”
매일 같이 해명하는 데 진땀을 뺀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건과 달리 김 전 지사 문제에 대해서는 청와대도 철저히 말을 아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 김 전 지사 판결에 대한 청와대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서면 질문에 “입장이 없다”고 답했다. 박 수석도 22일 JTBC ‘썰전 라이브’에 나와 김 전 지사의 유죄 판결에 대한 야권의 문 “대통령 사과를 요구를 두고 “야당의 말씀을 잘 듣고 있지만 청와대의 입장은 없다”고 재차 선을 그었다.
민주당은 김 전 지사 문제에 대해 아예 역공에 나섰다. 야당이 차기 대선을 앞두고 전형적인 정치 공세를 펼친다는 식으로 맞받아치는 모양새다. 김영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경수 판결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정당성을 잃었다느니 운운하면서 앞다퉈 대선 불복 발언을 쏟아내는 야당에 엄중히 경고한다”며 “제아무리 유신의 후예, 쿠데타 세력의 후예, 이명박·박근혜의 후예라고 할지라도 21세기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대선 불복은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말라”고 비판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세력인 박근혜 정권을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한 촛불 정부”라며 “감히 정통성 운운하는 것은 탄핵을 부정하고 촛불 시민을 모욕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혜숙 최고위원도 “야당은 문 대통령의 사과까지 요구하는데 이 사안이 대통령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국가정보원과 군을 동원해 댓글을 조작해 3%포인트 차이로 당선된 정권을 만들었던 사람들 눈에는 댓글 조작만 보인다”고 비꼬았다.
전재수 민주당 의원도 같은 날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나와 “드루킹 댓글이 있었던 해의 대통령 선거는 문재인 후보가 무려 17%포인트 차이로 이겼다”며 “불법적 행위를 전제한다고 하더라도 드루킹 댓글이 구체적인 국민들의 투표행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의 대선 캠프 상황본부장을 맡은 최인호 민주당 의원은 24일 이 전 대표와 김 전 지사 간 전화통화 내용도 공개했다. 이 통화에서 김 전 지사는 “대통령님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고 이 전 대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통령님을 잘 모시겠습니다”라고 답했다. 김 전 지사를 연결 고리로 하는 ‘친문 지지’가 민주당 내에서는 여전히 큰 정치적 힘을 갖고 있음을 상징하는 단면이었다.
文 지지율은 40%대 고공행진…대북·방역·백신·민생 집중할 듯
문 대통령이 김 전 지사 판결과 관련한 야당 공세에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가는 건 임기 말까지 지지율이 굳건하다는 자신감도 일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된 이후 문 대통령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급반등한 양상을 보였다.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문 대통령 지지율은 이제 40%대 중반까지 도달해 부정 평가와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특히 임기 마지막 해에 대통령 지지율이 여당 지지율보다 10%포인트 가까이 높은 현상은 이전에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당과 대권 주자들이 임기 말까지 청와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당분간 정권에 불리한 김 전 지사 이슈 등에 일일이 대응하기보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북한 대화, 방역 강화, 백신 접종, 민생 경제 회복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을 이유로 오는 8월초로 예정했던 여름휴가 계획도 연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25일에는 그간 국무총리가 주재하던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도 직접 주재하기로 했다. <관련기사> ▶[단독] 코로나 대유행에...文대통령도 여름휴가 "연기"
박 수석은 21일 BBS 라디오 ‘박경수의 아침저널’에 나와 대통령 지지율이 40%를 넘는 상황을 두고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 국정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여러 가지 분석 해볼 수 있자만 우리가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며 “정치적 중립을 정확히 지켜가면서 방역과 백신 접종의 속도를 높이는 일, 민생경제를 살리는 일, 이 세 가지 이외에는 청와대가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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