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25일 중국 방문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반(反)외국제재법을 첫 적용해 대미 보복제재에 나섰다. 미중 회담이 순탄치 못할 것으로 우려된다. 다만 미국 정부가 앞서 비자 사기 혐의로 기소한 중국군 소속 연구원들의 공소를 취소하며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4일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외교부는 전일 홈페이지를 통해 윌버 로스 전 미 상무장관을 비롯해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 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및 홍콩민주주의위원회(HKDC) 소속 홍콩 문제 관련 인사 7명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이는 앞서 미국의 홍콩 관련 제재에 대해 보복한 것이다.
반외국제재법은 중국이 서방의 제재에 반격하기 위해 지난달 1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속전속결 통과돼 즉시 시행됐는데 겨우 한달만에 처음 적용된 사례가 나온 셈이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측이 홍콩의 기업환경을 더럽히고 불법적으로 홍콩 내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했다”며 보복제재의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이번 미국인 등에 대한 ‘반외국제재법’ 적용은 셔먼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25일 중국 방문을 앞두고 이틀 전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일단 미국도 맞받아쳤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런 (중국의 제재) 조치에 굴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조치들은 중국이 개인과 기업, 시민사회 조직을 어떻게 처벌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제재 명단에 오른 소피 리처드슨 HRW 중국 국장은 “(인권유린 범죄 연루에서) 중국이 관심을 돌리기 위해 외교적으로 성질을 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6일 홍콩에서 활동하는 자국 기업을 향해 사업 위험성을 경고하는 ‘경보’를 발령하고 홍콩 인권탄압에 연루된 중국 당국자 7명을 제재했다. 지난 13일에는 중국 신장 지역 인권유린과 관련된 거래와 투자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하는 경보를 내렸다.
이런 중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25일 셔먼 부장관의 방중은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강해지고 있다. 현재 몽골을 방문중인 셔먼 부장관은 25~26일 중국 톈진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 등과 회담을 할 예정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셔먼 부장관의 방문을 앞두고 중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는 기사에서 “회의 직전 중국이 제재를 가한 것은 미중 회담 진전에 대한 약간의 희망조차 무너뜨린 것”이라며 “회담에 대한 기대치는 아주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미중 간에는 지난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만났고 이어 4월에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미국의 존 케리 기후특사가 중국측 파트너를 만났지만 모두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 부회장은 “오는 10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양측 정상의 만남을 앞두고 분위기 조성을 위한 중요한 첫 단계”라고 말했다.
다만 24일 미국이 앞서 비자 사기 혐의로 기소한 중국군 소속 연구원들의 공소를 취소하면서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미국 월스리트저널(WSJ)은 이날 미국 법무부가 중국군(인민해방군) 경력을 숨기고 미국 연구기관에서 활동했던 중국 연구자 5명의 공판을 앞두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법무부 측은 중국 연구자들의 수감 기간이 길어 처벌 목적이 달성된 것이 공소 취소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비자 신청 때 군 경력을 숨기는 등 허위정보를 기재하는 비자 사기의 경우 징역형 수개월이 일반적이지만, 이들은 1년 전에 체포돼 수감 중이라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공소 취소 결정과 셔먼 부장관의 방중은 관련이 없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