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한지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색상·기능으로 한지가 디지털 시대에도 유용한 생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알려야 합니다.”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 인정된 안치용(62·사진) 장인은 2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전통 한지를 평생 만들어온 장인으로 인정받아 기쁘지만 어깨도 그만큼 무겁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문화재청은 안 씨를 비롯해 김삼식(75)·신현세(74) 장인 등 세 명을 한지장으로 인정했다.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는 기존의 홍춘수 장인(79)뿐이지만 이번에 세 명이 늘면서 총 네 명이 됐다.
안 장인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한지 공장인 신풍한지를 40여 년간 이끌며 색 한지, 입체 문양지, 흡음 한지 등 기능성 한지를 개발했다. 지난 2013년 별세한 류행영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에게 한지 제작 기술을 배운 그는 2007년 충북 한지장으로도 선정됐으며 현재 신풍전통한지마을 대표와 괴산 한지박물관장도 맡고 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아버지의 한지 공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해 50여 년을 한지 제작에 몸담았다”며 “이 지역에 스무 곳이 넘던 한지 공장들이 다 사라지고 이제 이곳에서 3대째 명맥을 잇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곳 한지는 괴산·제천 등의 참닥나무 껍질을 벗겨 두드리고 삶는 과정과 닥나무 섬유를 넣은 닥풀 물에서 한지를 뜨는 물질, 종이를 부드럽게 하는 도침 등까지 약 20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안 장인은 “모터로 두드림 공정을 대체한 것 외에는 물질 등 전 과정이 여전히 수작업으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기계화가 되지 않는 탓에 생산량이 적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판매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수요가 점점 더 줄어 10년 전에 생산한 한지를 지금 팔기도 한다”며 “시장에서 자연 친화성과 보존성이 뛰어난 한지를 몰라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지 수명이 3,000~5,000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로 밝혀졌다. 그런 만큼 한지 우수성은 해외에서 이미 인정받고 있다. 2019년 말에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문화재 복원 담당자들이 괴산한지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안 장인은 “프랑스 문화재 복원 담당자들은 한지의 질감, 내구성을 높게 평가했고 실제 그들에게 한지를 제공했다”며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있는 ‘아부다비 루브르’에서 한지 유물전을 열기 위해 괴산박물관에 한지 공예품 등을 의뢰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지의 전통만큼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80~1990년대 이미 색 한지, 황토 한지 등을 개발한 그는 독창적인 한지 기술과 관련한 특허 15건을 등록했다. 안 장인은 “내구성에 기능성과 아름다움을 가미한 한지가 일상생활에서 이로운 도구임을 적극 홍보해야 한다”며 ”공공 분야도 장기 보관용 문서나 상장 용지 등을 한지로 대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가 한지장이 된 그의 꿈은 K팝처럼 한지가 세계로 널리 알려지는 것이다. 전통 한지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재차 강조한 안 장인은 “전통문화가 자꾸 사라지면 그 나라 역사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라며 “현재 명맥을 잇는 제조 시설이라도 활성화하는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