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가디슈' 김윤석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공감 얻었으면"

[모가디슈] 소말리아를 건설해버린 초거대 세트..남북 실화기반 전쟁+오락+류승완 액션 Escape from Mogadishu 영화리뷰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정만식, 구교환 출연



김윤석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연기 경력 30년, ‘베테랑 배우’라는 수식어가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김윤석에게도 부담은 언제나 있다. 그 무게를 떨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작품과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 그중에서도 1순위로 꼽는 것은 관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하는 것이다. 영화 ‘모가디슈’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김윤석은 26일 ‘모가디슈’ 개봉을 이틀 앞두고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류승완 감독과 의기투합한 ‘모가디슈’는 1991년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으로 인해 고립된 사람들의 생사를 건 탈출을 그린 영화다. 김윤석은 UN 가입을 위해 소말리아에 외교 총력전을 펼치는 대한민국 대사관 한신성 대사 역을 맡았다. 그는 리더십과 인간미를 고루 갖춘 한 대사를 탁월하게 소화해내며 찬사를 이끌어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지만 극장 예매율 1위를 달성하며 쾌조의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힘든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조금씩 양보해서 ‘이 시즌에 개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모았어요. 곧 관객들을 만날 텐데 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더운 아프리카에서 촬영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덥거든요. 시원한 극장에서 좋은 영화 한 편 보여드린다는 마음 하나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어요. 뜨거운 올여름에 1순위로 피서지를 선택한다면 ‘모가디슈’ 극장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모가디슈’는 90년대 초반 소말리아를 표현하기 위해 아프리카 모로코를 촬영지로 선택, 100%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됐다. 김윤석은 처음 류승완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받고 ‘불가능’이라고 생각했다고. 미술 세팅을 비롯해 서로 언어가 다른 수 백 명의 아프리카 배우 캐스팅을 해 촬영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실현된다면 대단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류 감독에 대한 신뢰감으로 뛰어들었다.


“모두가 100% 만족할 수 없어요. 배우들마다 아쉬운 부분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배우들끼리도 ‘영상화하는 게 불가능’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어마어마한 점검을 통해 이런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게 뿌듯해요. 우리나라 영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지평을 열었다고 생각해요.”


큰 스케일을 넘어 김윤석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흥미로운 소재와 캐릭터다. 외형적인 재능과 능력을 가진 사람의 탈출기가 아니라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다. 대사라고는 하지만 오지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가장 평범한 사람인 한 대사와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난관을 뚫고 나간다는 것이 인간적이고 매력적이었다. 히어로가 아닌 일반인의 모습으로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도전처럼 느껴졌다.


“여느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와 달랐어요. 솔직히 말하면 인간 김윤석의 모습이 반 정도 비친 것 같아요. 정의롭다는 것보다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능력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에 마음과 귀를 여는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매력적이었죠. 그래서 즐겁게 찍었어요.”



김윤석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로코에서의 촬영은 다행히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10월부터 약 4개월간 진행됐다. 배우들은 그 기간 동안 모로코에서 머무르며 함께 생활했다. 찜통 같은 더위는 물론, 문화적·종교적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스태프들도 많았다. 반면 김윤석은 로컬 식당을 탐방하는 걸 좋아할 정도로 음식에 어려움도 없었고, 미세먼지 없는 자연이 좋았다며 그리워했다.


“단 한 장면도 국내에서 찍은 게 없어요. 저에게는 그 4개월이 온전히 그 속에 빠져들어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낯선 외국 배우들과 어우러져 합을 맞추고 연기했던 것들이 잊지 못할 기억이에요. 한 대사처럼 저 또한 집에서 떨어져 나와 먼 곳에서 촬영하니까 마치 그 캐릭터에 반 정도는 이입이 된 것 같았어요. 특히 해외에 못 가는 지금 상황에서 잊지 못할 아름다운 기억이 됐어요.”


남북 관계의 대립과 협력이라는 설정은 자칫 식상하기도 하고, 지나친 감성적 전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모가디슈’는 신파를 걷어내고 담백함을 더했다. 김윤석 역시 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기에 시대상을 십분 이해하고 과장되지 않게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91년도는 제가 대학생일 때인데 그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안 되어 있던 시기예요. 그만큼 남북 관계가 좋지 않고, 서로 대화하는 자체가 차단되어 있었죠. 그렇게 살벌한 냉전 시대에서 먼 아프리카 오지에서 내란이 일어난 상태에 말이 통하는 유일한 사람들끼리 비무장으로 만나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일단은 서로가 다 살아남아야 하니까 관객들이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럴 수밖에 없구나’라는 걸 공감해 주신다면 이 영화가 그리려는 것에 가장 가깝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카체이싱 장면 또한 힘든 촬영이었다. 자동차 역시 구하기도 힘든 91년식이었고, 낡을 데로 낡아서 시동도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제가 운전한 차 의자는 스프링이 올라와서 속옷까지 찢어졌더라고요. 또 그 차에 카메라가 한 대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각도에서 촬영하기 위해 상판을 절단해서 촬영하고 결합하는 식이었어요. 그래도 만족스럽게 카체이싱 장면이 나와서 고생한 보람을 느껴요.”



김윤석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모가디슈’는 스케일만큼이나 연기파로 소문난 배우들이 대거 모였다. 김윤석을 비롯해 조인성, 허준호, 구교환, 김소진, 정만식 등이 호흡을 맞췄다. 그는 많은 캐릭터들이 서로 앙상블을 이뤄내며 누군가가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조절하려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 조화되는 게 최고의 매력이었다고 느꼈다.


“조인성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배우였어요.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고 ‘참 좋은 배우구나. 꼭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죠. 사석에서 두어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조인성이 합류한다는 소식을 듣고 배우 대 배우로 만나는 것도 좋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보다 적은 나이임에도 굉장한 절제력과 이성을 갖고 있는데 그런 담백한 것이 연기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조인성의 연기는 신뢰감을 주고, 저와는 억지로 하지 않아도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어요.”


“허준호 선배님에게는 사석에서 형이라고 부르는데, 카리스마 있는 모습과 달리 평소에는 언제나 웃고 있어요. 말수도 많지 않고 항상 뒤에서 웃으면서 바라보는 느낌이죠. 그분의 그런 모습들이 림용수 대사의 모습과 상당히 겹쳐있다고 생각해요. 나서지 않을 때 절대 나서지 않고, 나서야 할 때 나서는 절제력 있는 모습이요. 한 대사보다 20년 먼저 아프리카에서 터를 다져온 사람이기에 능력 있고 자신만만한 모습도 굉장히 잘 어울렸어요. 이번에 첫 호흡인데 저는 이런 배우들이 오래오래 작업하길 바라고, 또 만나고 싶어요.”



김윤석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언젠가 꼭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류승완 감독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두 번 정도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었지만 서로 스케줄이 맞지 않아 진행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어긋나게 되면 다시 시나리오를 건네주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류 감독이 ‘우리가 손발을 맞춰보자’고 제안해 준 덕에 성사될 수 있었다.


“류 감독님에 대해서는 ‘신발을 안 벗고 자겠다’는 표현한 적이 있어요. 24시간을 영화 현장 속에 있는 사람이에요. 항상 현장에서 모든 걸 직접 점검하는 모습이 ‘이 사람은 책상에 앉아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구나. 벌판에 나와서 사자처럼 날아다니면서 영화를 만드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 모습이 흐뭇했어요. 현장에서 허물없이 소통하면서 공동 작업이고 한식구라는 느낌을 확실히 줘서 좋았어요.”


2019년 영화 ‘미성년’으로 감독으로도 데뷔한 김윤석은 그런 류 감독을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류 감독이 총지휘를 하며 각 파트의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들을 보고 ‘나는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들고, 디테일을 갖춰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판타지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차근차근 발전하려는 마음이다.


“감독을 하다가 배우로 돌아오니 ‘내가 맡은 일만 하면 되니까 배우가 훨씬 편하구나’라는 생각이 요만큼 들었어요. 감독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도 감독으로서 작품을 만들었을 때 성취감도 대단해요. 차기 감독 작품은 아직 없어요. 머리에 쥐가 나고 있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웃음)


“연기자는 작품을 만날 때마다 조금씩 발전하고 또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놓치면 퇴보하는 것인데, 퇴보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겁니다. 둘 다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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