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R&D 4조 넘었지만...규제·비리에 막히고 해커에 털린 軍기술

[창간기획 리셋 더 넥스트]
<6·끝> 고슴도치 전략 - 국방 기술 3중고
조달 복마전...국방부 당국자가 부정청탁 받고 사업 취소도
'활주로 조류퇴치 로봇'은 당국 불허로 기술시험·시연 못해
KAI 올 두번이나 해킹 당해...개발해서 '적'에게 기술 줄 판

충남 태안군 국방과학연구소(ADD) 안흥시험장에서 열린 국방과학 합동시연에서 관계자들이 군사용 웨어러블 로봇 시연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방위산업체는 국방 관련 신기술이 규제와 조달 비리, 북한의 해킹 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연합뉴스


“돈 들여 기술 개발하고 국산화하면 뭐합니까. 규제나 조달 비리에 막혀 기술이 사장되기 일쑤인데요.”(A 방위산업체 간부)


“이제 우리의 방산 기술은 세계적 수준이지만 정보관리가 취약합니다. 툭하면 해킹에 털리니 적성국에서 악용될까 걱정입니다.”(예비역 B 준장)




올해 우리나라 국방 연구개발(R&D) 예산이 사상 처음 4조 원을 돌파한 가운데 군과 방위산업계 안팎에서는 기대감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정부가 첨단 무기 등을 도입하고 기존 재래식 장비들도 개선하겠다며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지만 무기 및 장비를 개발해 획득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누수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혈세를 들여 확보한 군의 기술 자산이 조달 비리, 규제 문턱, 해킹 공격의 3중고에 직면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방산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軍 조달 복마전에 밀린 첨단 기술=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일명 ‘액체 방탄복’ 사업이다. 정부는 지난 2007~2012년 일반 소총탄은 물론 철갑탄도 막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경량화된 방탄복 기술을 국책 연구 과제 사업으로 추진했다. 평상시에는 물렁물렁한 일종의 액체 겔 상태였다가 총탄 등의 충격이 가해지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어 총탄을 막도록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른바 ‘전단농단유체(STF)’ 기술로 국방과학연구소(ADD)의 주도하에 국내 대기업 및 중소기업과 함께 개발에 나섰다. 그 결과 ADD는 STF를 아라미드와 같은 방탄 섬유와 세라믹 방탄판에 합성시키는 방식으로 신개념 방탄복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철갑탄까지 방호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게도 기존 제품 대비 10% 이상 가벼웠다는 홍보도 곁들였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군은 액체 방탄복을 도입하지 않았다. 그 결과 20억여 원의 혈세를 들여 개발한 액체 방탄복 기술은 완전히 잊혀졌다. 해당 기술을 개발했던 기업 관계자는 “사내에서 현재 해당 사업을 기억하는 분이 거의 없다”며 “현재로서는 후속 연구나 사업으로 진행되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신 2012년 S사와 수의계약 방식으로 재래식 방탄복을 구입했는데 이것이 바로 ‘다목적 방탄복’ 사업이다. 이후 감사원은 국방부 당국자가 경쟁 업체의 부정 청탁을 받고 액체 방탄복 사업을 취소시켰으며 다목적 방탄복을 구매했다는 취지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규제 장벽에 가로막힌 기술 시험과 시연=민간 방산 기업이 직접 개발해 시제품까지 제작하고도 규제로 인해 테스트베드조차 확보하지 못한 기술들도 있다. 국내 대형 방산 기업 C사가 개발한 ‘활주로 조류 퇴치 로봇’이 그 중 하나다. 우리 군은 활주로 주변을 날아다니는 새떼로 몸살을 앓아왔다. C사는 이 같은 군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활주로 주변을 수시로 돌아다니면서 새떼를 쫓는 로봇을 수년 전 개발했다. 하지만 그 성능을 시험하고 군의 인정을 받기 위해 일부 활주로를 테스트베드로 삼아 시험하려 해도 군과 항공 당국이 보안 등을 이유로 불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 시험·시연조차 어려운 규제 장벽에 대한 고민은 C사뿐 아니라 다른 방산 기관이나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단순히 기계식 장비 수준을 넘어 전자·통신·소프트웨어 기술 등이 결합된 첨단 장비 영역일수록 규제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한 방위산업계의 연구자는 “첨단 군용 장비 운용에 있어 기초적인 기반인 군용 주파수 획득조차 여러 규제와 산업계 이해관계로 인해 쉽지 않다”며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하고는 있지만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하다”고 전했다.


◇개발해서 ‘적’에게 기술 줄 판=더 큰 문제는 해킹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경우 올해만 두 번이나 해킹 당해 상당량의 문서를 탈취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 정부가 십여 년간 수조 원을 들여 개발해온 한국형 전투기(KF-21)인 ‘보라매’ 개발 사업의 설계 도면을 비롯해 경공격기인 FA-50, 차기 군단급 무인기, 헬기 등과 관련한 데이터가 유출됐을 수 있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앞서 2016년에는 대우조선해양이 해킹을 당해 3,000톤급 국산 잠수함 개발 설계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 등이 유출된 바 있다. 정보 당국은 이번 KAI와 앞선 대우조선해양 등의 해킹 사건 배후에 북한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부와 방위산업계는 해킹을 당할 때마다 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다짐해왔지만 좀처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방위산업계 관계자는 “큰 해킹 사고가 터져도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퇴하거나 민형사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고 대충 유야무야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재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방산 기업에 대해 정보 보안 인증 제도를 운용해 일정 수준의 해킹 방지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방산업체로 등록하지 못하게 하고 중견 이상 업체와 연구기관에 대해서는 최고정보보안책임자를 두고 전문 인력과 조직을 확보하도록 함으로써 정보 보안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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