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9월 8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는 ‘코로나19 방역 공로자 표창대회’가 열렸다. 중국 감염병 전문가 중난산 중국공정원 원사가 ‘공화국 훈장’을 받는 등 방역 공로자들이 영웅 취급을 받았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도 참석해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를 선언했다. 한때 우한에서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이 있다는 비난을 받은 시진핑은 오히려 코로나를 진압한 지도자로 평가되면서 최고의 나날을 보냈다.
#. 그로부터 한달여 뒤인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에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은 중국이 현행 금융 시스템을 ‘전당포 영업’이라고 비판하며 공산당 수뇌부가 다수인 청중들을 당혹 속으로 밀어넣었다. 마윈의 소신발언이 괘씸죄에 걸려 알리바바는 지금까지 각종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당시 시진핑은 알리바바의 자회사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을 직접 지시하며 ‘홍색 규제’의 막을 올렸다. 홍색 규제는 지난달 24일 사교육 금지를 포함해 점점 강화되는 중이다.
#. 올해 6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중부 저장성을 ‘공동부유 시범구’로 지정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함께 부유해지는 것은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라고 주장했다. 덩샤오핑이 내건 ‘선부론(先富論)’에서 이젠 탈피, 마오쩌둥의 ‘공부론(共富論)’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과 1인 독재로 더 유명하다. 저장성은 알리바바의 본거지이자 시진핑이 2002~2007년 성 공산당 서기 등을 역임한 곳이다.
7월 24일 중국 정부는 사교육에 관한 규제를 내놓았다. 중국서 교육산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 특히 중국 교육기업이 상장한 뉴욕증시가 크게 반응했다. 뉴욕증시에서 중국의 3대 교육기업이 급락해 사실상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중국과 홍콩 증시도 폭락장을 연출하며 한주 동안 지수가 4~5%가 빠졌다. 외국계 자본이 빠져나간 것과 함께 중국인들이 투매에 동참했기 때문이다. 증시 폭락에 놀란 중국 증권 당국이 부랴부랴 심야에 투자은행 회의를 소집해 “새로운 규제가 나올 때는 미리 알리겠다”고 했을 정도다.
중국 정부의 기존 규제는 시장의 불합리를 바로잡는다는 명분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사교육 규제는 교육산업 자체를 없애버릴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중국 정부의 사회주의 성격의 ‘홍색 규제’가 본격 발동을 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교육 규제 파문은 크게 보면 지난해 10월부터 진행된 중국 정부의 기업규제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 정부는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을 시작으로 주로 빅테크 기업(대형 기술기업)을 대상으로 규제를 강화했다. 이들 기업의 활동 무대인 인터넷이 중국 공산당의 일당지배체제 유지에 가장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인다. 알리바바·텐센트에 이어 디디추싱·메이퇀 등 인터넷 플랫폼 기업, 교육기업 등에 규제의 칼날이 들어왔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이제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람 마냥 규제의 칼날을 놓을 수 없게 됐다. 중국 정부의 기업규제가 어디까지 계속될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다.
특히 올해 들어서 규제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중국 정부의 불안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물가불안과 실업률 증가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표적인 경기지표인 국가통계국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4에 그치면서 1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회복 이후에 가장 낮다는 의미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지난달 30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한 하반기 경제 분석 회의에서 “전 세계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변하고 있고 외부 환경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으며 국내 경제 회복도 여전히 불안정하고 불균형하다”고 인정했다.
코로나19 첫 충격 이후 급락했던 중국의 경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급속하게 회복됐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주춤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국제통화기금(IMF)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8.1%로 예상했다. 여전히 높은 수치이긴 하지만 앞서 지난 4월 내놓았던 전망치 8.4%에 비해서는 한참 낮아진 것이다.
이는 글로벌 경기의 여전한 악화와 중국내의 소비부진이 주 이유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공동부유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이를 일부 부도덕한 기업의 책임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사익’을 취해 거부가 된 빅테크 기업이 희생양이 되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마윈이다. 마윈은 중국 최대의 부자이지만 그의 부의 상당 부분은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의 거래에서 나온 수수료로 확보한 것이다. 특히 앤트그룹의 매출은 중국의 결제서비스 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알리페이를 통한 대출이 주로 차지한다.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을 규제했을 때 일부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도 교통혁명을 일으켰지만 서민 운전자를 착취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반독점 규제라는 말 자체가 중소기업과 서민에 대해 불공정 거래를 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중국 정세를 전하면서 “중국에서 사회 안정에 위협적인 개인이나 기업 누구나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여기서 사회 안정은 중국 공산당 주도의 안정이다.
특히 사교육 규제는 최근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되고 있는 중국내 인구감소와 직접 관계가 있다. 전통적으로 인구문제는 중국 통치자들의 ‘선정’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그런 인구의 감소가 예상된 것이다. 사교육 규제는 중국 경기둔화와 생활 수준 하락으로 인한 저출산을 교육비 문제로 몰아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중국 내 출생인구는 1,200만명으로 전년대비 18%나 줄었다. 올해도 비슷한 감소가 예상된다. 중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여성 1인당 1.3명으로, 앞서 2016년 1.7명에서 급락했다. 올해나 내년에 중국 총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설 수 있다. 이는 노동력의 부족을 불러와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의 권력 강화와 이들 기업들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 여기다. 중국 공산당은 내년 10월로 예정된 제 20차 당대회(전국대표대회)에서 차기 수뇌부를 구성한다.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이 3연임을 통해 권력을 계속 장악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다.
공교롭게도 마윈의 쓴소리는 당대회를 정확히 2년 앞둔 시기에 나왔다. 시진핑이 권력 유지에 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딴지를 건 것이다. 특히 당시는 코로나19 승리로 한껏 자신감이 차있던 순간이었다.
중국이 독재국가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인터넷 공간을 통해 일정정도 다양한 목소리를 허용하고 있다. 이를 테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독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 이들은 정부에 유리한 애국주의 형태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기도 한다. 반대로 해석하면 중국내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이들 인터넷 기업들이 이윤을 위해 딴 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등 중국 인터넷 빅테크 등을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상황이다. 이는 같은 독재 체재라도 문화대혁명을 추진했던 마오쩌둥과 현재의 중국 공산당 수뇌부가 다른 상황이다. 권력 강화를 위해서는 이들 기업을 장악하는 과정에 파열음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3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사교육 업계 단속은 담론과 이념을 중국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대학 진학이 목표인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게 되는데 이는 결국 자본주의 교육시장을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시장 친화적인 사교육을 없애고 사회주의적 학교교육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이번 사교육단속의 목표라는 것이다. 대신에 이는 중국내 1,200억달러 규모의 사교육시장을 초토화시켰다. 글로벌 자본시장도 패닉에 빠뜨렸다.
중국 관영 매체나 관변 학자들은 이러한 논란들이 중국 경제가 안정궤도에 올라서기 위한 진통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해외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 중국이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업들을 옥죄는 강도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 차이가 지난주부터 계속되고 있는 해외 증시의 중국기업 주식과 중국·홍콩 증시의 폭락을 부은 이유다. 해외 언론들의 목소리는 더욱 직설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동안 투자자들이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공산당에 맞춰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는데 이제는 공통점을 찾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즉 1년여 앞으로 다가온 시진핑의 3연임 추진을 앞두고 이러한 인터넷 기업 옥죄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 방식의 포퓰리즘이 확대되는 가운데 더 큰 규제 칼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업체 주식에 이어 또 다른 휴짓조각이 탄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다. 3일에는 중국의 관영 매체가 청소년에 대한 유해론으로 온라인 게임 산업을 공격하면서 텐센트·넷이즈 등 게임업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신문사 하나의 주장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경고이자 미래 예고라는 인식이 퍼졌기 때문이다. 강화되는 중국 공산당 및 시진핑 권력과 함께 시장의 긴장감을 높이면서 전체적으로 사회를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미 정치 매체인 포린어페어스는 “시진핑이 내부의 인터넷 반대자들을 억눌러 권력을 강화하면서도 혁신을 통해 미국을 이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중국은 갑작스러운 경기회복세 둔화와 함께 다시 찾아온 코로나19 위기에 휩싸여 있다. ‘코로나19 전쟁에서의 승리’를 선언한지 1년이나 됐는데 델타 변이를 통한 대확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6개월동안 코로나19 발생이 없던 베이징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지난해 초 코로나19의 진앙지였던 후베이성 우한에서도 지난 2일 15개월 만에 환자가 나오면서 1,200만 시민이 다시 핵산 전수검사를 받게 됐다.
하루 확진자가 100명 가량으로 절대적인 숫자는 적지만 지역 봉쇄와 이동 통제, 수백만명 전수검사 위주의 방역을 펼치는 중국 정부 때문에 전국이 초긴장 상태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지방 방역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 ‘승리’ 상황이 오래되면서 병원 등 다수에서 방역 허점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변이의 확산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데 중국 경제와, 더 나아가서 시진핑의 권력 시나리오에도 충격을 가할 수 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서는 수천명 외국인의 단기 입국이 불가피하다 이들은 현재 만리장성급의 철통방역을 내세우는 중국의 코로나 해외유입 방지시스템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다. 중국은 아직 베이징 올림픽 관련 해외 선수나 관계자, 관광객에 대한 입국 절차를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