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비즈] 자율주행기술 미래에 한국은 없다…경쟁서 밀리는 韓 자동차 산업

글로벌 자율주행 20위권 내 韓업체 전무
핵심기술 부재 속 탄소 등 환경장벽 강화
국내 생산 기반 흔드는 강성노조도 문제
전문인력 부족도 기술격차 원인으로 지적


미래차 경쟁력의 핵심은 친환경차(전기차)와 자율주행이다. 우리나라는 현대차·기아만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 두 가지 분야 모두 핵심 기술력에서 양적·질적으로 주요 국가들에 한참 뒤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탄소국경세 도입 등 환경 장벽을 강화하고 글로벌 가치사슬을 재편하는 와중에 우리는 이에 대응할 무기, 즉 핵심 기술력 부재에 시달리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국내 생산 기반 축소, 중국 판매 부진, 강성 노조까지 겹친 5중고로 국내 자동차 산업은 시름에 잠겼다.





자율주행 기술 20위권 전무

5일 시장조사 업체 가이드하우스인사이트가 집계한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순위를 보면 1~20위권 안에는 웨이모(구글)·포드·GM크루즈·인텔(모빌아이)·모셔널 등 미국 기업과 바이두 등 중국 기업이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현대차그룹이 합작 투자한 모셔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기업은 20위권 안에 단 한 곳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완성차 업체는 물론 구글·바이두·인텔 등 빅테크 기업이 순위에 이름을 올린 미국·중국·독일과 달리 우리나라 빅테크 기업의 이름은 전무하다.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세계 최강자인 엔비디아를 비롯해 인텔·퀄컴·테슬라·구글(웨이모)·애플 등 정보기술(IT) 및 반도체 기업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술력에서 최상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반면 우리나라 테크 기업 중에서는 주목받는 곳이 없다.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의 자회사인 웨이모는 완성차 업체 FCA의 ‘퍼시피카’와 재규어의 ‘I-FACE’ 모델에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 뒤 시험 주행을 하고 있으며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는 ‘아폴로’라는 자율주행 플랫폼을 중심으로 세계 완성차 및 빅테크 기업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3월 스마트 전기차 사업 진출을 선언한 중국 IT 공룡 샤오미는 최근 자율주행 개발 인력 수백 명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내 경쟁사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미래차 분야에서 가장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술이 자율주행”이라며 “이 때문에 선진국들은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반도체·소프트웨어 기업까지 일제히 자율주행 플랫폼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현대차그룹이 공동 투자한 모셔널을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제외하면 반도체·IT 기업들의 투자는 사실상 제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표 당겨진 내연기관 판매 금지

지난달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밝히면서 오는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2025 전략’을 통해 2040년까지 유럽·미국·중국 등 핵심 시장에서 전면 전동화를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현대차그룹은 당장 이 시기를 5년 이상 앞당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반면 경쟁자들은 앞서 나가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볼보는 2030년 완전 전동화를 선언했고 아우디폭스바겐그룹과 BMW도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50%로 확대하겠다고 천명했다.


현대차·기아는 친환경차를 대거 출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6월 글로벌 친환경차 판매 순위(클린 테크티카)를 보면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7위, 13위에 머물렀다. 상위권은 테슬라, BYD, 폭스바겐, SGMW(상하이차·GM 합작사), BMW, SAIC(상하이차) 등 미국과 중국·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휩쓸었다. 아이오닉5(현대차)와 EV6(기아)의 해외 판매가 본격화되면 이 순위가 다소 바뀔 수 있으나 부가가치가 큰 고급 전기차 시장에서의 열세를 만회하기에는 버겁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연구개발(R&D) 규모도 현대차·기아는 36억 유로로 폭스바겐(약 139억 유로), 도요타(약 86억 유로)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국내 생산 줄어들고, 중국 시장도 고전

미래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국내 자동차 생태계가 선순환 체계를 갖춰야 한다. 완성차와 부품 업체들이 내연기관 차량 판매로 올린 수익을 미래차 R&D에 투자함으로써 미래차로의 생태계 전환을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높은 원가 부담 탓에 국내 자동차 생산 기반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실제 국내 자동차 생산 대수는 2015년 455만 6,000대로 정점을 찍었다가 줄곧 내리막을 타 지난해 350만 7,000대에 머물렀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올 상반기 현대차·기아는 중국에서 각각 18만 7,639대와 6만 1,594를 판매했는데 이는 2015년의 30%에 불과한 수준이다. 중국 친환경차 판매 순위는 40위권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에서 자율주행과 전기차 기술 개발을 위한 규제 ‘제로’ 지대를 만들어 관련 산업을 집적시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는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미래차와 관련된 모든 기술을 자유롭게 실증할 수 있는 일종의 ‘미래차 시티’ 같은 것을 조성해 완성차, 부품 업체, 테크 기업들을 한데 모아 기술 개발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 인력 부족한데 국내 車 교육은 기계공학만 고집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피어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관련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미래차의 근간이 돼야 할 소프트웨어 분야는 기계공학 일변도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동도 걸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국자동차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친환경차 시장 확대와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라는 양 축을 중심으로 자동차 산업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SNER·내비건트리서치에 따르면 친환경차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신차 판매의 20~30%(약 5770만 대), 자율주행차 시장은 같은 기간 신차 판매의 49%(레벨 3 이상)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산화율이 99%에 이르는 내연기관 부품 산업과는 달리 미래차 부품 산업은 국산화율·기술 수준이 부족하고 관련 공급망이 미약하다. 미래차 부품은 국산화율이 전기차 68%, 수소차 71%,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38% 등으로 낮다.


기술 격차가 벌어지는 주요 원인은 전문 인력 부족이다. 기업이 미래차에 대한 대응 필요성과 성장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인력이 없어 미래차 연구개발에 적극적으로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28년까지 필요한 미래차 산업 기술 인력 수요는 연평균 5.8% 증가해 8만 9,069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기계·조립 기능 교육 중심의 인재 양성이 이뤄지고 있어 소프트웨어·설계 등 미래차 전환을 위한 핵심 인력이 부족하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는 미래차 분야 석·박사급 핵심 인력 양성 사업 계획에 따르면 지난 2020년에 10개 대학에서 200명만이 배출돼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반면 폭스바겐·도요타 등 해외 완성차 강자들은 수조 원을 쏟아부으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2019년 소프트웨어 전담 조직을 출범시키고 3,000명의 개발자를 새로 영입했다. 도요타는 들러리 수준이었던 소프트웨어 부서를 전면에 내세우고 1차 협력 업체들을 전부 소프트웨어 기반 업체로 교체했다. 미국 포드는 내연기관에서 저하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2016~2019년 300명에 불과했던 프로그래머를 4,000명 이상으로 증원했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자동차 산업 인력이 아직까지 기계공학 엔지니어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은 차량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만 2만 3,000명으로 국내 자동차 엔지니어를 다 합친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품 업계 인력 수급 미스매치 완화와 미래차 산업의 포용적 고용 전환을 위한 인적자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동차연구원은 “미래차 제어·소프트웨어 등 석·박사급 신규 인력을 양성하고 미래차 등 신성장 산업 인재 9만 명 양성 등 지원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확장해 미래 인력 수급 미스매치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르쌍쉐’ 외국계 3사는 미래차 계획 전무

시장 양극화에 외국계 완성차 업체인 르노삼성·쌍용차·한국GM은 미래차 시대에 대한 대비가 전무하다. 자동차를 만들어 팔수록 적자가 심해져 미래차 생산에 관해서는 계획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다.


5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외국계 완성차 3사는 올 상반기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12.3% 감소한 24만 319대를 생산한 것으로 집계됐다. 판매량의 경우 8만 8,625대로 전년 동기 대비 감소 폭이 35.4%로 더 심각하다. 특히 3사의 판매량과 생산량은 외환위기를 겪었던 지난 1998년 이후 23년 만에 최소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수입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4만 2,017대)와 BMW(3만 6,261대)에도 상반기 판매량이 뒤지면서 국내 완성차 시장이 현대차·기아와 벤츠, BMW의 ‘4강 구도’로 재편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르쌍쉐’로 불리는 외국계 3사의 추락은 신모델 부재와 경영 위기로 브랜드 이미지가 저하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800억 원의 적자를 낸 르노삼성은 ‘XM3’가 해외시장에서 양호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본사로부터 신차 물량을 배정받지 못해 미래가 불안한 상황이다. 지난해 3,169억 원의 영업 손실을 낸 한국GM은 판매량 지속 하락에 국내 생산 모델을 줄이고 있어 일각에서는 공장 폐쇄 우려까지 나온다. 새 주인을 찾고 있는 쌍용차는 지난달 30일 마감된 인수의향서 제출에 국내외 9개 기업이 참가하면서 예상 밖의 흥행에 성공했지만 참여 기업들의 자금 동원력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영 위기에 외국계 3사는 친환경·자율주행으로 대표되는 미래 자동차 패러다임 전환에 대비할 골든타임도 놓쳤다. 한국GM과 르노삼성은 각각 해외에서 제조한 전기차 ‘볼트EV’와 ‘르노 조에’를 국내시장에 내놓았지만 판매량이 신통치 않다. 쌍용차의 경우 올해 안에 첫 전기차 ‘코란도 이모션’을 출시할 예정이지만 이미 시장 주도권을 빼앗긴 뒤라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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