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24시] 아시아 민주주의 함정과 한국이 나아갈 방향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서구의 근대문명 키운 중심 가치는
군사·경제력 등 물질적인 것이 아닌
개인의 자유 기반한 민주주의 도입
韓도 '부흥' 앞서 민주화 생각하기를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지난달 1일에 진행된 중국 공산당의 창당 100주년 행사에서 행해진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설은 적어도 자신이 집권하는 동안 ‘중국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분으로 압박하는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울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구미 지역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지적을 “중국 공산당과 중국 인민을 갈라놓고 대립시키려는” 시도이고, 환영할 만한 “건의와 선의의 비평”이 아니라 “‘교관’처럼 기고만장한 설교”라고 비판하며 그러한 시도는 “14억 중국 인민이 피와 살로 쌓아 만든 강철 장성 앞에 부딪혀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서 대립을 불사하겠다는 선명한 자세와 각오를 엿볼 수 있다. 이는 작금의 미중 갈등이 단순히 양국 간의 경제적 대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코로나19 사태의 대처에서 보듯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안전 및 효율성을 둘러싼 진영 간, 체제 간 공방과 경쟁이라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다양한 질문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고 합당한가 하는 질문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지만, 그 이전에 중국 공산당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제기하는 구미에 맞서려는 중국 공산당은 과연 어떤 중국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좀 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물론 민주주의 체제라는 것이 천편일률적으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고, 따라서 세계 각국은 자국의 형편에 맞는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다는 목적론적인 정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할 수 있는 수단적인 정의를 추구한다면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경우에는 개인의 자유와 그러한 자유의사가 표명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그리고 그러한 의사가 모아지고 결정될 수 있는 자유 비밀선거가 보장돼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단지 허울뿐이고 국민이 아닌 집권 세력인 공산당의 이익을 반영해 좌우되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역사학자인 요나하 준 교수가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수년 전에 한국어로도 번역된 ‘중국화하는 일본’이라는 책을 통해 요나하 교수는 10세기 후반의 송나라 시기에 이미 중세를 넘어서 근세에 돌입한 중국이 왜 근대로 발전하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그 주된 요인으로서 독재 권력에 대응하는 견제 세력의 부재와 생존을 위한 종족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10세기 후반에 송나라를 건국하면서 종전의 귀족제도를 철폐해 경제와 사회의 자유화를 추구하고 합리적인 관료 채용 시험에 기초한 황제 집권 체제를 완성한 중국이 근세에 돌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황제의 독재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이 부재해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실패해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닌 권력의 남용과 종족주의의 횡행을 가져와 결국 부패하고 쇠퇴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포퓰리즘적 수단으로 권력 집중화를 추구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자민당의 리더십을 비판할 목적을 가진 요나하 교수의 이러한 분석에 대해 일본 국내 정치의 측면에서는 이견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구미의 근대 문명에 대한 우리들 동아시아 지역의 오해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돼 흥미롭다. 구미의 근대 문명이 총칼을 찬 제국주의의 모습으로 상륙했기에 우리는 구미의 근대 문명을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만 오해한다. 한일중 3국에서 공히 제시된 동도서기(東道西器), 화혼양재(和魂洋才),중체서용(中體西用)의 개념 및 모토가 그런 물질주의적 오해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구미 근대 문명의 핵심은 이런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개인의 발견은 중세의 종교적 무지몽매함을 탈피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중요하기에 타인도 배려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형성도 가능하게 했으며,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돼 과학적 방법론을 가져왔던 것이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향상은 이러한 정신적 혁명의 부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겠는데, 달리 말하면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민주주의의 도입은 구미 근대 문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근대 문명에 대한 이러한 오해가 빚어낸 결과가 시 주석의 중국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고 안타깝다. 19세기 중반 이후 중국이 당해야 했던 굴욕은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그럴수록 진정 무엇이 문제였는지는 더욱 정확히 파악해야지, 정치적 선동물이나 감정적 대응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중국 공산당의 창건 100주년, 집권 70여 년은 중국 왕조사에 있어서도 시작에 불과한 짧은 기간이다. 진정으로 부흥을 꿈꾼다면 작금의 경제성장에 만족하지 말고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생각하기를 바라는데, 이는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 한국에도 경구가 되기를 바란다. 타국에 대한 배려 없이 흥미 위주의 조소를 태연히 보도하는 일부 언론의 태도는 우리도 지난 세월의 성공으로 해서 자만심이 팽배할 대로 팽배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충격적인 예였다. 근대 문명의 폐해라고 할 수 있는 식민 지배와 개발독재를 슬기롭게 극복해 민주화를 달성하고 민주주의를 더욱 숙성시켜나가려는, 더욱이 홍익인간상을 건국이념으로 제시하는 한국은 그래도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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