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윤 생활산업부 기자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이 지분 매각 일정을 돌연 연기했다. 수천억 원, 많게는 수조 원이 오가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상상하기 힘든 ‘노쇼(계약 미이행)’가 벌어진 것이다.
물론 ‘변심’에 의한 계약 파기는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파트 값이 급등하자 집주인이 계약 파기를 하려고 한다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홍 전 회장이 돌연 매각 절차를 지연시킨 것도 남양유업 주가가 상승하고 주변에서 ‘헐값 매각’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왔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이 때문에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겠다는 제3의 매수자가 등장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불가리스 사태’로 쫓기듯 지분을 매각하는 홍 전 회장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겠다는 본전 심리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홍 전 회장 개인의 사정을 고려하기에는 남양유업 임직원들이 처한 현실이 너무 딱하다.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홍 전 회장이 회사를 팔겠다고 하자 새로운 꿈을 꿨다. 통상 사모펀드에 매각되면 ‘점령군이 들어왔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오너 리스크’에서 해방돼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됐다며 한앤컴퍼니 관계자들에게 고강도 업무 보고를 실시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남양유업의 한 직원은 “여러 사건들이 있었음에도 제가 회사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제품력’만큼은 뛰어나다는 자부심”이었다며 “회사의 성장을 막던 오너 리스크가 해결돼 회사의 재기를 위해 더욱 열심히 다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홍 전 회장의 노쇼로 남양유업 임직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임직원뿐 아니라 주주들도 큰 타격을 받았다. 홍 전 회장의 노쇼 이후 남양유업 주가는 최고점 대비 30% 가까이 떨어졌다.
홍 전 회장은 한때 2,000여 명의 직원을 이끌던 기업의 수장이었다. 수장은 본인뿐 아니라 2,000여 명 직원의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위치다. “국민께 죄송하다”던 홍 전 회장의 눈물에 진심이 있다면 매각 과정에서만큼이라도 직원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