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같은 조건의 아파트라도 매매가가 달라지는 ‘다중 가격’이 고착화되고 있다. 세입자가 없어 즉시 입주가 가능한 매물이 가장 비싸고 신규 전세 계약을 낀 매물, 갱신 전세 계약을 낀 매물, 월세를 낀 매물 순으로 가격 편차가 생기는 것이다. 지난해 7월 말 도입된 새 임대차법의 영향으로 전세 시장에서 신규 계약과 갱신 계약 간 이중 가격이 빚어졌는데 매매 시장까지 다중 가격 현상이 옮겨붙어 서민들의 주거 고통을 더 키우고 있다.
다중 가격 심화는 집값·전셋값 상승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전주 대비 0.2% 상승하며 12·16 대책이 나왔던 2019년 12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전세 시장도 쑥대밭이 됐다. KB 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전셋값은 지난해 7월 4억 9,922만 원에서 올해 7월 6억 3,483만 원으로 27.2%나 치솟았다.
설상가상으로 아파트 전세 물량이 부족해지자 빌라·오피스텔로 수요가 몰리면서 ‘깡통 전세 주의보’까지 발령됐다. 올 6월 전국 오피스텔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은 84.63%를 기록했고 수도권 빌라 역시 3채 중 1채는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 수준을 웃도는 ‘깡통 전세’다. 새 임대차법 도입으로 촉발된 아파트 전세난이 빌라와 오피스텔로 번져 무주택 서민들은 전세금까지 떼일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이런데도 정부는 규제의 고삐를 더욱 조일 태세다. 신규 전세 계약에도 인상률 상한선을 두는 방안을 내놓는가 하면 다주택자의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감면 조건을 줄이는 등 거꾸로 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초토화된 것은 ‘헛발질 규제’ 탓인데도 반시장 정책만 고집하는 것이다. 정부는 늦기 전에 양도세 규제를 풀고 민간 중심의 아파트 공급을 늘리는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실거주 의무 조항을 없애자마자 전세 매물이 쏟아진 은마아파트 사례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최선이라는 진리를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