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 무역으로 힘을 키우며 에게해 일대를 주름잡았다. 그리스 문자도 덩달아 세계 각지로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로마자가 발달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오늘날의 그리스 문자는 이오니아 문자에서 비롯됐지만 당시만 해도 지배적인 것은 에우보이아(현대 그리스어로 에비아) 문자였다.
로마자와 알파벳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에비아는 그리스에서 크레타 다음으로 두 번째 큰 섬이다. 길이는 180㎞ 정도로 그리스 본토 오른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붙어 있다. 그리스 본토와 에비아섬 사이에는 에우리포스 해협이 있다. 해협이라고는 하지만 육지와 섬 사이가 워낙 가까워 두 개의 연육교로 연결돼 있을 정도다.
이 섬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죽기 1년 전 여생을 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기원전 323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사망하자 아테네에서는 반마케도니아 운동이 다시 일어났다. 아테네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한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그에게 불경죄를 뒤집어씌었다. 제2의 소크라테스가 될 위기에 처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가 철학에 같은 죄를 두 번 짓게 할 수 없다”며 어머니의 고향인 에비아섬의 칼키스로 떠났다. 칼키스와 지척인 에레트리아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곳이다. 일리아드에서 에레트리아는 트로이 전쟁에 배를 지원한 그리스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그리스 당국이 최근 에비아섬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지 못해 주민과 관광객 2,000여 명이 배를 타고 피신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프랑스와 영국은 그리스에 화재 진압용 비행기와 소방관 등을 긴급히 파견했다. 화재는 에비아섬은 물론 수도인 아테네 등 곳곳에서 2주일 이상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가 화재 진압에 실패해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은 어려운 재정 형편 탓에 소방 인력과 장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1981년 좌파 정권이 집권한 이후 재정을 물 쓰듯 쓴 끝에 국가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재정을 낭비해 정작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존재 이유인 국민 안전도 지키지 못하는 그리스가 남 일만은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