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추행' 76일만에 보고 ...피해자·가해자 분리도 '늑장'

공군 이어 해군서도 女중사 사망
부실대응으로 골든타임 또 놓쳐
文대통령 "엄정 수사하라" 격노

상사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신고한 뒤 숨진 여성 해군 중사의 빈소가 마련된 대전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정문 전경./대전=연합뉴스

해군 여성 부사관이 최근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후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상부에 대한 늑장 보고 문제가 불거졌다.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 조치도 거의 두 달이 지나서야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상반기 발생했던 성추행 피해 공군 여성 부사관 사망 사건에 이어 또다시 비슷한 부실 대응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 보고와 피해자 보호조치가 즉시 제대로 이뤄졌으면 피해자의 사망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13일 해군 등에 따르면 서욱 국방부 장관은 성추행 피해를 신고했던 해군 소속 A 중사가 숨진 상태로 발견되기 전날인 이달 11일에야 성추행 피해 관련 보고를 처음 받았다. 성추행 발생 76일 만이다. 늑장 보고의 이유에 대해 군은 A 중사가 당초 피해 사실의 유출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현행 군 제도상으로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보고가 이뤄지지 않아 제도상 허점이 드러난 셈이다. 서 장관은 이번 사건에 대해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족과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사과 내용을 국방부 관계자를 통해 밝혔다.


앞서 A 중사는 인천의 한 도서 지역 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지난 5월 27일 민간 식당에서 B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A 중사는 피해를 당한 직후 상관에게 알렸으나 해당 상관은 정식 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달 7일 A 중사가 부대장을 면담해 피해 사실을 재차 알렸고 부대장은 이틀 뒤인 9일에야 피해자 요청으로 해당 사건을 제 2함대 사령부에 정식 보고했다. 함대 군사경찰과 해군작전사령부·해군본부 산하 양성평등센터에 대한 보고도 이날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본부 군경은 이 내용을 이달 11일 부석종 참모총장 및 국방부 조사본부에 보고했다. 서 장관도 이날 해당 성추행 피해 사건 관련 첫 보고를 받았다.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치도 뒤늦게 이뤄졌다. 군 당국은 A 중사의 요청에 따라 이달 9일에서야 그를 육상 부대로 파견 조치함으로써 가해자와 분리시켰다. A 상사는 소속 부대를 옮긴 지 사흘 만인 12일 숙소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군 당국은 피해자의 사인에 대해 극단적 선택의 가능성도 고려해 조사하고 있다. 유족 측은 부검 없이 장례식을 치르기를 희망해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은 어렵게 됐다. 유족 측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강력한 처분을 원한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아이가 마지막 피해자로 남을 수 있도록 재발 방지를 바란다”는 입장을 해군에 전달한 상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오전 이번 사건을 보고 받고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도 유사한 사고가 거듭된 것에 대해 격노했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밝혔다. 문 대통령은 “한 치의 의혹이 없도록 국방부는 철저하고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에서는 군 내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이 거듭 일어나자 국정조사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야당에서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국방 장관 경질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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