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락대전’이 한창이다 보니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를 제외하고 다른 더불어민주당 경선후보의 주목도는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판사판 사생결판’ 명락대전이 암묵적인 동맹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재명-이낙연 신경전이 뜨거워질수록 나머지 4명 후보는 관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고, 빅2주자로 쏠림현상이 심화되는 것이지요. 기자 역시 <여쏙야쏙 26편>에 명락대전의 배경부터 진단했습니다.
다만 아직도 임기말 대통령 지지율은 40%대를 유지하고 있고 여당 유력 예비후보의 지지율은 3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대세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나머지 4명 후보 역시 역전을 목표로 필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정치일선에서 물러난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정세균 전 총리를 가리켜 “지지율이 낮다.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이 명예교수는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까지 포함해 “공부를 많이 했고 의회도 거쳤으며 국제적인 감각도 있다”며 “두 사람 모두 의정 경험을 비롯해 정무·정책적 역할을 골고루 수행했었다”고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으니 대한민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칭한겁니다.
실제 총리직을 내려놓고 대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 적어도 5%지지율은 확보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정 총리의 지지율은 2%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민주당 다른 경선 예비후보인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나 박용진 의원에게도 밀리자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와 함께 ‘빅3’주자라고 칭하던 언론도 슬그머니 ‘빅2’라고 정정하고 나섰습니다.
6선 국회의원에 산업부장관, 당대표, 국회의장, 국무총리 등 말그대로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정 전 총리의 중량감을 고려하면 지지율 정체를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정세균 캠프에서 정무·전략을 담당하는 김민석 의원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제 정세균의 시간이 시작됐다”고 자신했습니다. 새로운 반전의 기회가 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 오긴 할까요.
‘88만원세대’저자로 유명한 우석훈 박사는 ‘다크히어로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정 전총리에 대해 아래와 같이 묘사합니다. 민주당이 야당시절이던 19대 국회 후반부의 일입니다.
<그 시절 정세균은 한 때 유명했던 계파가 그야말로 ‘인수분해’된 시절이라 정치인 중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대중에게도 뚜렷한 이미지가 없는 스타일이다. 그는 정말 별거 없었다.(중략)국회 토론회에서 국회의원들은 인사말을 하고 토론회가 시작되면 썰물 같이 빠져 나간다. 그런 국회의원의 모습에 익숙했던 젊은 연구원들에게 한 줄 한 줄 메모하고 질문하던 정세균은 연예인 느낌을 주었다. 사례비도 제대로 주기 어렵고, 자리도 약속할 수 없던 야당시절, 우리가 가진 것은 정세균 밖에 없었다>
인기나 지위, 영향력 등을 따지지 않고 정 전총리가 묵묵하게 해야할 일을 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우 박사는 <선거가 가까워지면 많은 사람들이 정책과 공약 사이에서 ‘브랜드 공약’을 찾아 헤맨다. 머리가 좋으면 만들 것 같지만, 좋은 공약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수많은 공약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도 미묘한 일이다. 선거는 바람이 결정하지만 정책의 방향은 공약이 결정한다. 정세균은 선거도 잘하지만, 공약 설계에서는 가히 테크니션이다. 그에게 많이 배웠다>
정세균의 ‘브랜드 공약’은 무엇일까요. 지난 13일 국민건강보험 서울요양원을 방문한 정 전 총리는 ‘어르신 돌봄 국가책임제’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정 전 총리는 1%도 안되는 공공 요양시설 비율을 20%까지 확대키로 했습니다.
하루 전날에는 ‘GDP 4만 달러 시대’를 목표로 한 경제성장 공약인 SK노믹스를 발표했습니다. 무엇보다 정 전 총리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공존을 앞세웠는데요. 대중소기업 연대임금제 도입을 통해 소득불평등을 완화시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정 전 총리 측은 임금인상분을 온누리상품권 및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으로 활용했던 금융노조 사회연대임금을 그 사례로 제시했고, 비정규직 우대임금제(120%) 도입으로 임금격차 해소와 노동시장 유연성도 확보한다는 구상도 밝혔습니다. 또 하루 전인 11일에는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1일 1공약을 내놓고 있는 셈입니다. 특히 학교시설과 부지를 활용해 서울?수도권 내 부족한 택지를 마련한다는 아이디어로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른바 학품아(학교를 품은 아파트)는 최근 발표된 부동산 정책과 공약들 가운데 주목도가 높았습니다.
지난달에는 제1공약으로 충청권을 중심으로 강원과 전북을 포괄하는 신수도권 전략을 발표했습니다. 정 전 총리는 충청에 이어 강원과 전북을 관통하는 중부권 발전 청사진을 제시해 수도권 일극체제를 극복하겠다는 복안입니다.
충청권에 국회 뿐만 아니라 법원과 법무부, 대검찰청을 이전시키겠다고 밝혀 민주당 본경선뿐만 아니라 대선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해온 충청권 표심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특히 민주당 지역 경선이 충청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기선제압을 해보겠다는 의도가 읽힙니다.
정 전 총리의 브랜드 공약 눈치 채셨나요? 1일 1공약으로 승부를 걸고 있는데 강력한 한방이 눈에 들어오진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공약,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와 같은 사회적 논쟁을 일으킬 브랜드 공약을 정 전 총리가 내놓을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다시 우 박사의 책을 인용 하겠습니다. <정세균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여전히 생각하는 것은, 그가 선거에 임하면 정말로 ‘다크 히어로’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이유를 잘 설명하기는 어렵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당에는 정권교체를 위한 혁신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전북에서 내리 4선을 했던 정세균에게는 불출마 압박이 강했다.
그의 일생일대의 베팅은 그 순간이었는데,홍사덕이라는 거물이 버티고 있는 서울 종로로 옮겼다. (중략) 정세균은 수성을 잘하는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가 어려운 것은 수성을 잘할 사람을 공성의 시기에 선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수성을 잘하는 사람 중에서 정세균은 공성에도 가장 능하다.(중략)생각보다 정세균은 다크하다.
오세훈을 꺾을 때에는 그의 주변에서는 이제는 정말로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긴다"고 하는 얘기를 나 말고는 아무도 안 믿었다. 그 힘으로 그는 국회의장을 하고, 총리를 했다. (중략)국회의장으로 더 서열이 낮은 총리를 한 사람은 정세균이 유일하다. 생각보다 그가 ‘다크’하다는 것에는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정 전총리는 ‘다크 히어로’로 돌변해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요. 민주당 지역경선은 오는 9월 4일 대전·충남과 이튿날 세종·충북을 시작으로 총 11차례 치러집니다. 9월 12일에는 국민·일반당원 선거인단 득표 결과가 처음 공개되는 이른바 '1차 슈퍼위크'입니다.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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