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슈화시킨 ‘능력주의(메리토크라시)’는 차기 대선 정국까지 이어질 정치권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로 꼽힌다. 지대(rent)추구 사회를 극복할 유일한 대안이라는 찬성 의견과 함께 시험 지상주의라는 반대 입장까지 각종 주장이 쏟아지고 있지만, ‘능력주의’에 대한 개념 정의부터 제각각인 탓에 찬반 측은 좀처럼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에 따라 최근 출간된 ‘메리토크라시(행복한북클럽)’와 저자인 이영달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이사(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메리토크라시라시의 정의 ▲한국 능력주의 담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 ▲ 메리토크라시에 기반한 교육 및 경제 전략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15세 이상 풀타임 환산(FTE) 고용률이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은 58.6%를 기록해 사상 처음 50%대로 떨어졌으며, 2017년 2,084만명이었던 풀타임 근로자 수 역시 지난해 1,889만명으로 급감했다. 경제활동인구수가 2,800만명 내외 수준인 한국에서 약 2백만 명의 풀타임 일자리 감소는 우리의 일자리 구조가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공지능+로보틱스+사물인터넷’ 기술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디지털 노동자(Digital Labors)’는 이미 빠른 속도로 중간 과정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가장 빠르게 전개되는 영역은 콜센터와 은행 텔러 업무다. 전형적인 중간 과정 역할에 해당하는 일자리이다.
뉴욕 주정부 노동부의 ‘일자리 전망 2016년 vs. 2026년’ 예측치(뉴욕시 한정)를 보면, 전화교환원(-28.6%), 재봉사(-28.1%), 법무 보조원(-19.4%), 데이터 입력원(-18.3%), 리포터 및 통신원(-18.0%), 문서 작성원(-16.1%), 우편 사무원(-14.9%), 인쇄원(-14.9%), 전자제품 조립원(-12.5%), 꽃 디자이너(-12.1%), 은행 텔러(-11.7%), 편집원(-9.7%), 보험 계약원(-9.4%), 라디오 및 텔레비전 아나운서(-4.2%) 등의 직업이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
실제 미국 10대 보험사 중 7곳, 일본 최대 규모 통신사의 콜센터는 이미 디지털 노동자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사람이 직접 맡는 일은 기획 및 개발 역할로 한정된다. 최근 ‘가상 인간’이 CF 모델로 등장하여 화제가 된 것처럼, 기상 캐스터, 아나운서, 학원 강사, 학교 교사, 대학 교수 등의 역할도 가상의 인간이 대신하는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인간을 대체하는 디지털 노동력의 위력은 이미 통계로도 드러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인 2017년 말 기준 제조업 부문의 일자리는 전년보다 1.8% 감소했고, 2018년 -5.6%, 2019년 ?8.1% 등 감소폭은 이후에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는 산업 경쟁력의 쇠퇴와 병합되는 사항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직무 역할에 따른 ‘디지털 노동력’으로의 전환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중국의 일자리 상황도 비슷하다. (중국의 일자리 통계는 신뢰하기에 한계는 있지만) 도시 실업률 지표는 2017년 말까지만 해도 수년 동안 3% 중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했지만, 2018년부터 5% 수준으로 급등했다.
미국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국가경제연구국)의 연구원 3인이 지난 2015년 8월 발표한 ‘중국에서의 실업과 노동 참여의 장기 트렌드 보고’에 의하면 중국의 공식 통계치와 실질적인 실업률에는 최대 7~8%의 차이가 있다. 이미 2~3년 전부터 중국의 실업 문제가 중요하게 강조되었는데, 이는 ‘미중무역전쟁’ 이전부터 중국에서 ‘디지털 노동력의 대체 현상’이 시작됐다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영달 이사는 “앞으로의 사회는 더욱 고도화된 지식과 기술, 이를 토대로 한 ‘가치 창출력’을 지녀야만 직업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여러 현상과 데이터들은 이미 웅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시 기준(2019 년) 컴퓨터 및 정보시스템 관리자(Computer and Information Systems Managers)의 직업군은 연봉 중위값이 19만0,790달러(환율 1,200 원/$1 적용 시, 약 2 억 3 천만원)로 전체 직업군 중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 수요 또한 가장 많은 직업군 중 하나이다. 특히 이러한 인력의 수요가 많은 금융산업의 경우, 평균 연봉 수준은 2018 년 기준 39만8,600달러로, 전 산업 평균 9만2,600달러 대비 4.3 배 이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노동력’을 개발 운영 하는데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사람에 의존하는 것보다 노동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는 셈이다.
이영달 이사는 “글로벌 공급망의 변화로 일자리의 특성이 변화하는 것도 있지만, ‘디지털 노동력’에 의해 현재 중간 과정자적 역할을 하는 일자리, 즉 중간 지대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디지털 노동자가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미국의 경우, 단기적으로 직무 전환을 위한 재교육과 생계 지원 정책을 유의미한 규모로 펼치고 있다. 또한 새로운 미래 환경 변화에 부응할 수 있도록 교육 혁신도 근원적 처방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차기 대선이 국가 혁신의 과제를 토론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확산되고 있다. 국가 혁신 전략은 국가를 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번영의 미래로 이끄는 마스터플랜을 뜻한다.
G20 중 국가 혁신에 성공한 국가로는 미국과 영국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용 지표 등이 역사상 가장 좋았던 시기(미국 1950년대, 영국 1970년대) 이후 현재 일자리 관련 통계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프랑스는 최정점이었던 1975년 대비 현재 3배에 가까운 실업률을 기록 중이며, 프랑스보다는 상대적으로 형편이 낫지만 독일 역시 역동성을 잃어가는 징후가 뚜렷하다.
한국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수립해 현재까지 실행되고 있는 미국 혁신을 위한 전략(A STRATEGY FOR AMERICAN INNOVATION)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2010년 캐머런 전 총리가 마련한 국가 혁신 전략이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결과 지난 7월 ‘UK Innovation Strategy’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발표된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영달 이사는 “미국과 영국의 국가 혁신 전략의 골자는 사람에 대한 투자다. 경제시스템 자체를 혁신과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혁신 경제로 전환하는 것”이라며 “교육 혁신을 전개해 미래세대와 기성세대가 능동적이고 주도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혁신의 첫 단추”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