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쿠팡 찾아라…한국서 '유니콘 원석' 캐는 글로벌 벤처캐피털

■K스타트업에 쏟아지는 러브콜
쿠팡·야놀자 등 성공사례 늘어나자
초기 단계 韓 스타트업 발굴·육성
굿워터캐피털, 韓 법인 설립 추진
앤틀러는 자체 창업프로그램 가동
올 프리A 해외투자액 작년의 3배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글로벌 뭉칫돈이 몰리고 있다. 쿠팡·야놀자·하이퍼커넥트 등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비상장사)급에 올라선 한국 스타트업의 성공을 지켜본 해외 벤처캐피털(VC)의 국내 진출이 최근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시리즈A 투자 유치 이전 단계에 있는 이른바 극초기 단계 스타트업에까지 글로벌 VC들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이전에는 스케일업 과정에 글로벌 VC가 등장해 힘을 실었다면 이제는 ‘원석’ 단계의 스타트업 발굴에 정성을 쏟는 모습이다. 더구나 세계 최대 글로벌 VC인 비전펀드가 중국 정부의 정보기술(IT) 규제 탓에 중국 기업에 신규 투자를 중단하면서 상대적으로 ‘K스타트업’의 가치가 올라가는 분위기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페이스북·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테크 기업 투자에 성공한 미국 실리콘밸리 VC 굿워터캐피털이 한국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굿워터캐피털은 앞서 쿠팡·당근마켓·토스 등 K스타트업에 투자해 큰 성과를 챙겼다. 이에 따라 한국에 상주 담당자를 두고 본격적으로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알려졌다.


굿워터캐피털은 실제 초기 스타트업 투자도 단행하고 있다. 이달 들어 엔젤 투자 바로 다음 단계에 있는 메이크업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발라(VALLA)’에 시드 투자했다. 아직 베타 서비스도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인공지능(AI) 기술력과 창업 멤버 평가를 통해 투자에 참여했다. 지난해 말에는 프롭테크 스타트업 ‘동네’에 시드 투자 직후 신규 투자에 참여하기도했다. 부동산 중개 서비스 플랫폼 동네는 매튜 샴파인(차민근) 전 위워크코리아 대표와 위워크에서 함께했던 김인송 최고운영책임자(COO)가 공동 창업했다.


지난 2017년 싱가포르에서 설립된 뒤 전 세계 16개 지역에 지사를 둔 초얼리스테이지 VC ‘앤틀러’도 한국 진출 준비에 착수했다. 앤틀러는 스타트업 멤버가 구성되기 전 단계부터 ‘앤틀러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을 지원한다. 현재까지 300개 이상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앤틀러 프로그램은 독보적인 창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반년마다 전 세계에서 5만 명 이상이 지원할 만큼 인기다. 한국 운영 파트너로는 ‘숨고’의 공동 설립자이자 바이낸스에 피인수된 블록체인 스타트업 비액스비(BxB)의 공동 대표였던 강지호 파트너가 맡는다. 강 대표는 “올해 펀딩과 법인 설립을 마무리하고 오는 2022년부터 4년간 100개의 스타트업을 투자하고 육성할 계획”이라며 “쿠팡이 시발점이 된 후 글로벌 VC들이 직접 유망한 K스타트업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2007년부터 900개 이상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한 ‘레인메이킹’도 한국 진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레인메이킹은 35개국에 지사를 거느린 글로벌 VC다.


실제 이 같은 분위기는 투자 현황으로도 드러난다. 스타트업 투자 분석 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한국을 제외한 외국 투자사로부터의 시드 투자액은 이달 13일까지 60억 1,000만 원으로 2019년(78억 6,000만 원), 2020년(80억 7,000만 원) 한 해 전체 규모에 다가서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시리즈A 직전인 프리A 단계에는 올해만 119억 4,000만 원이 몰리며 2019년(42억 8,000만 원), 2020년(47억 4,000만 원)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다. 전체 투자 금액에서도 시리즈D·E 단계에서 대형 투자가 이어지며 올해 3조 9,000억 원을 넘겼다. 전체 9조 7,000억 원 중 40.3%에 달했다. 2019년(23.6%), 2020년(17.5%)에 비해 급등한 비중이다.


업계는 해외 VC의 한국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스타트업 생태계가 한 단계 더 올라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외 VC 투자를 유치한 한 스타트업 대표는 “해외 진출 계획이 있는 스타트업은 브랜딩·네트워크, 그리고 펀딩 규모에서 해외 VC를 선호한다”며 “모태 펀드를 중심으로 한 국내 VC와 비교해 8년 운영 기간에 비교적 의사 결정이 자유롭고 행정 처리가 간편한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초기에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VC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 글로벌 VC가 많아지면 경쟁 관계라기보다 협업할 수 있는 공동 투자자가 많아져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중국과 동남아시아까지만 주요 투자처로 여겼던 글로벌 VC가 최근 한국 스타트업을 주목하면서 투자업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순간이 왔다”며 “다만 자본의 흐름에 비해 국내 정책과 규제가 따르지 못하면 여전히 우물 밖을 뛰쳐나가지 못한 올챙이(스타트업)만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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