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보복땐 韓기업들 위기 맞을수도....이젠 정부가 나설때"

■법원, 미쓰비시 채권 압류 결정
전력·에너지 등 핵심사업 긴밀한데…日 대응에 촉각
"통상적 무역거래마저 정치 판단…결국 韓기업에 위협"
전문가 "정부가 큰 파국 치닫기 전에 타협점 찾아야"



우리 사법부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에 근거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가 ‘제3자’인 한국 기업으로 불똥이 튀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 1980년대부터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다양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온 LS(006260)그룹은 이번 사법부의 결정이 통상적인 무역 거래마저 흔드는 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가 자산 압류를 이유로 국내 기업 전체에 보복 조치를 단행할 경우 여파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전· LS일렉트릭, 日서 태양광사업 전개



20일 재계에 따르면 LS그룹은 전력·에너지·제련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과 다양한 협력을 추진해왔다. 핵심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LS일렉트릭(구 LS산전)은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2017년 일본 홋카이도 최대 규모의 태양광발전소인 ‘지토세태양광발전소’를 짓기도 했다. 일본 최초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연계 융복합 태양광발전소를 한국의 기술력으로 지은 모범 사례로 꼽힌다. 한전과 LS일렉트릭은 완공 후 20년간 상업 운전 등 발전소를 운영하고 유지할 책임도 맡고 있다.


국내 제련 산업의 선봉에 있는 LS니꼬동제련은 일본 제련 기업들과 함께 세운 합작사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국유기업에서 LG그룹으로, 다시 LS그룹으로 소유주는 바뀌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뛰어난 제련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19일 강제징용 피해 배상과 관련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LS엠트론은 1980년대부터 미쓰비시중공업 계열사와의 기술제휴를 통해 국산 트랙터의 품질과 성능을 개선해왔다. 40년에 걸쳐 꾸준한 투자를 이어온 LS엠트론은 현재 일본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크게 낮춰 수출 제품 가운데 극히 일부 모델에만 미쓰비시엔진시스템스의 제품을 넣고 있을 뿐이다. 국산 트랙터의 품질과 성능 향상에 기여해온 기업이라는 게 재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LS엠트론 관계자는 “공시한 사업보고서상 미쓰비시중공업과 거래하는 것으로 표기한 부분은 당사의 오류였다. 우리가 거래하는 업체를 정확히 확인해보니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닌 미쓰비시중공업엔진시스템스라는 다른 회사였다”고 설명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거느린 계열사가 수십여 개로 다양하며 거래 상대자로서 법인 간 지분 관계를 상세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일 외교갈등에 기업들 속앓이



재계는 이번 사법부의 결정이 직접적인 배상 책임이 있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아닌 물품 대금을 지급해야 할 책임이 있는 LS엠트론을 겨냥하면서 결국 한국 기업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물품 대금 미납으로 역소송을 당할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한 미쓰비시·스미토모·닛산·히타치 등 강제징용이라는 어두운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일본 주요 기업들이 한국 기업과의 거래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S엠트론의 경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8억 원의 금액을 지급하려고 해도 지급할 수조차 없는 애매한 상황에 있다. LS엠트론 관계자는 “우리도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채권추심 법인이 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다. 너무나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무엇보다 재계에서는 기업 간 통상적인 무역 거래마저 정치적 판단의 대상으로 바라본 이번 사법부의 결정이 한일 기업 간 관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당장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만약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에 이르게 되면 한일 관계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하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측에 반복해서 지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이 고조될수록 지지층의 지지를 얻는다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나서 기업 애로 풀어줘야



한일 관계 외교 전문가들 역시 한목소리로 이번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기존에 정부가 압류했던 것은 미쓰비시중공업 등 배상 책임이 있는 기업의 재산권이었지만 이번에는 무역 거래를 통해 발생한 채권(현금)”이라며 “강제징용에 연루된 일본 기업이 상당히 많은 만큼 한일 기업 간 무역 거래의 예측 가능성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전 대사는 이어 “만약 일본 기업의 재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나 채권 추심이 이뤄질 경우 일본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보복에 나설 수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맞대응하면서 상황은 더욱 꼬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나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권 교체기라고 해서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며 더 큰 파국으로 치닫기 전에 외교적 대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결국 한일 간 문제는 과거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통해 강제징용 등 모든 문제가 해결됐느냐도 한일 간 입장 차이가 있기에 원만한 협의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 모두 삼권분립 국가로서 행정부는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는 만큼 피해자 구제를 위한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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