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 추석을 앞두고 청탁금지법(김영란법) 농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상향하는 방안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법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농수산물 선물 가격 상향을 요청했던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장관도 잠잠하다. 정부 내에서는 경제 부처들이 인플레이션을 의식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4개월 연속 물가가 2%대로 상승한 데다 추석 전 국민 88%에게 국민상생지원금(5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선물 가액 상한이 농산물 가격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농민들은 “물가 상승에 책임이 있는 것은 정부인데 농가에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2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권익위는 오는 23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올 추석 명절 농수산물 선물 상한액을 20만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청탁금지법 시행령 개정안을 논의한다. 다만 내부 분위기는 회의적이다. 지난해 추석과 올 설 명절에 시행령을 개정했으나 이러한 조치가 반복되면 국민 신뢰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지난 1월 설 명절을 앞두고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을 찾아 농수산물 선물 가액 한시 상향을 요청했던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추석 기간에 농수산물 선물 매출이 전년 대비 7% 증가했다”며 선물 가액 상향을 긍정 평가한 바 있다.
정부의 이 같은 행보에는 농수산물 선물 가액 상향이 추석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물가 상승률이 4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면서 연간 물가 상승률이 정부의 기존 예상치인 1.8%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 들어 농축수산물 물가는 7월(9.6%)을 제외하고 매달 10% 이상의 상승률을 보였다.
더구나 올 추석을 앞두고는 전 국민 88%에게 인당 25만 원의 재난지원금 지급도 예정돼 있다. 지난해 전 국민에게 1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후 한 달간 한우(1등급) 소매가격은 5.9%, 국산 냉장 삼겹살 소매가격은 7.3% 오른 바 있다. 통상 추석에 고기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난지원금은 고기 값 추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집값과 인건비를 올리고 과도한 살처분으로 달걀 값을 폭등시켜놓고 농가만 때려 물가를 안정시키려 하고 있다”며 “왜 물가가 안정되지 않는지 근원적인 처방을 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추석 물가를 잡으라고 계속 난리인 것 같은데 농산물 가격이 상승했다 해도 과수화상병 등으로 피해를 본 농가들이 많아 선물 가액 인상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