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김정은 상대 잇딴 승소에…법원 '북한 재판권 면제' 연구 착수

지난해 7월 이후 北 상대 소송 잇따르자 연구 용역
헌법상 '불법단체'...일선 판사들 북한 주권 불인정
현 정부 등은 北 세습 정권도 '통일 동반자'로 봐
法행정처 "남북한 분단 특수관계 종합적 이해해야"
日서도 10월 北상대 첫 재판...'미수교' 면제 쟁점

김명수 대법원장. /연합뉴스

한국 법원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잇따르면서 사법부가 ‘북한 재판권 면제’와 관련한 연구에 착수했다. 헌법상으로는 ‘반국가단체’일 수 있는 북한의 권리를 다른 나라와 동등하게 볼 수 있는지가 연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관가와 법원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지난 18일 ‘남북한 특수관계에서 국제법상 재판권 면제 이론의 함의에 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 대상은 △국제법상 재판권 면제 이론의 구체적 내용 △국제법상 재판권 면제 이론의 최근 전개 방향(중대 인권침해 행위 중심) △남북한 특수관계론 △분단국가라는 특수관계에서 재판권 면제 이론의 함의 △동·서독 사이에서 재판권 면제 논의 여부·내용 △통일 진행 과정에서 남북한 특수관계의 변용과 그에 따른 재판권 면제 이론의 의미 등이다. 연구 기간은 내년 2월까지다.


재판권 면제란 주권을 가진 한 국가가 다른 나라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국제관습법상 원칙이다. 주권 면제라고도 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던 한모(가운데)씨와 사단법인 물망초 등 소송대리인 및 관계자들이 지난해 7월7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이 이번 연구에 착수한 데에는 지난해 7월7일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 노역을 했던 참전 군인들이 김정은 위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승소 판결을 받은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김 위원장과 북한 정부가 피고들에게 각각 2,1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 판결은 피고 측 항소가 없어 같은 달 23일 그대로 확정됐다. 법조계에서는 이를 북한에 대한 우리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최초의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 판결 이후 김 위원장과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추가 민사 소송이 전국에서 잇따랐다.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관련 재판만도 4건에 달한다. 올 3월에는 6·25 납북 피해자 자녀가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5,000만원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1968년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사건으로 일가족 5명을 모두 잃고 생을 마감한 피해자의 아들도 같은 달 김 위원장과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행정처는 연구제안서에서 이를 두고 “현재 법원에는 북한을 피고로 하는 동종의 민사 사건이 다수 제기됐고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상황은 이런데 이와 같은 유형의 사건에 대한 제반 연구는 상당히 부족하다. 남북한 특수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충분치 않다”고 우려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분단국가라는 특수관계에서 재판권 면제 이론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통일의 진행 과정에 따라 재판권 면제 이론의 의미가 어떻게 변용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필요성이 있다”며 “관련 사건을 맡은 재판부가 좀 더 풍성해진 연구 결과의 바탕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접근할 것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북한 정권의 법적 지위에 관해서는 그간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영토 조항인 헌법 3조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 땅 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노리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돼 원칙적으로 ‘주권을 가진 외국’이 될 수 없다. 반면 현 정부 등 평화 통일 조항인 헌법 4조에 가중치를 두는 진영에서는 북한 세습 정권도 ‘조국 평화 통일을 위한 대화·협력의 동반자’로 본다. 1991년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것을 두고 국제사회가 북한을 간접 승인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역시 북한의 이 같은 이중성을 판례로 모두 인정하고 있다.


북한에 대한 재판권 면제 여부는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최근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일본으로 탈북한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5억엔(한화 약 5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첫 재판이 올 10월14일에 열린다. 원고들은 북한이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을 믿고 북송사업에 참여했다가 일본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억압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본 정부가 미수교 상태인 북한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은 점을 들어 북한은 주권 면제 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한 관계자는 “법원 밖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 보자는 취지의 연구”라며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라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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