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로 중과실 추정 법 사례 없다"...친문도 언론법 맹점 비판

與 내부서도 언론법 격론
새벽 법사위 단독 처리하는 과정서
의원들 '고의·중과실' 문제점 지적
친문 황희장관도 명확한 답 못내놔
윤호중, 국회 전원위원회 소집 요구

김남국(왼쪽부터)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주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직무대리, 김승원, 김영배 의원 등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주먹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형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25일 새벽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하는 과정에서 개정안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당은 그동안 언론중재법과 관련해 ‘가짜 뉴스 피해 구제법’이라고 강조해왔지만 여당 일부 의원조차 언론계와 학계, 시민 단체에서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꼬집었기 때문이다.


이날 법사위의 마지막 안건이었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일방적인 회의 진행이라고 비판하며 전원 퇴장해 여당 의원들만 논의를 이어갔다. 여당 의원들만 남은 법사위는 2시간여 동안 공전을 거듭했다. 특히 도마 위에 오른 조항은 민주당이 수정에 수정을 이어갔던 제30조 2항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특칙’이었다. 판사 출신의 최기상 의원은 “허위·조작 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입은 경우 고의·중과실로 추정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회복이 가능한 손해는 어떤 경우냐”고 개정안의 맹점을 지적했다. ‘회복하기 어려운’과 ‘회복이 가능한’ 손해를 구분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검사 출신의 송기헌 의원도 “손해가 크고 결과가 중하다고 해서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사례는 법적으로 없다”며 “어떤 행위가 뚜렷하게 있지 않은데 결과만 가지고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것이 가능하겠느냐”고 문제점을 따졌다. 결과로 행위를 판단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법안을 주도한 김용민 의원조차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명백한’이라는 표현은 불필요하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또 소병철 의원은 ‘피해 가중’을 지적하며 “가중 입증까지 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고 법 조항의 허점을 짚었다. 이에 법사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은 박주민 의원은 새벽 3시 25분께 판례 등을 찾아보자며 10분여간 정회를 결정했다. 하지만 결국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의 일부 요건만 삭제하고 대부분 원안대로 처리했다. 개정안은 2시간여의 공회전만 거듭한 뒤 회의 속개 이후 10여분 만인 새벽 3시 54분에 여당 단독으로 통과됐다.


민주당은 당내에서도 개정안의 허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나오자 국회 전원위원회 카드를 내밀었다. 윤호중 원내대표는 이날 “개정안 보강을 위해 전원위원회 소집 요구가 있다는 것을 국회의장과 야당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국회 전원위는 각종 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거나 위원회가 제안한 의안 가운데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법률안에 대해 의원 전원이 다시 한 번 심사하도록 만든 제도다. 통상 야당이 지연작전을 위해 쓰는 카드지만 여당이 이례적으로 제안하자 절차와 내용상 허점을 무마하기 위해 이 같은 카드를 꺼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내용상 문제점을 보강하겠다는 실질적인 이유와 함께 절차상 하자를 면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한편 주무 부처인 문체부의 개정안 입장이 황 장관 임명 이후 180도 바뀌었다는 점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국회 문체위 소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오영우 문체부 1차관은 개정안에 대해 “언론에 대한 검열 논란이라든가 언론 자유 침해의 우려가 있어 수용하기가 어렵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친문 강성으로 꼽히는 황 장관이 임명된 후 급변했다. 황 장관은 이날 법사위에서도 “가짜 뉴스 피해 구제에는 (개정안이) 미흡하지만 문체위에서 야당의 의견을 수렴하고 언론계의 의견을 받아서 만들어진 법인 만큼 원안대로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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