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장지수펀드(ETF)의 투자 열기가 지속되면서 ‘머니무브’를 이끌고 있다. 특히 올해는 ETF 시장이 양적인 성장을 넘어 투자 패턴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등 질적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그동안 ETF 시장을 주도했던 코스피·코스닥 지수의 방향성에 베팅하는 ‘곱버스’ ‘레버리지’ ETF에 대한 인기는 크게 시든 반면 혁신 산업에 투자하는 테마형 ETF나 해외지수형 ETF들이 개인 순매수 상위 종목에 대거 포진했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8일까지 개인투자자들의 ETF 순매수 금액은 4조 6,671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한 해 개인 투자 순매수 금액 5조 5,318억 원의 84.3%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더해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서도 올 들어 2조~3조 원가량의 ETF 매수가 이뤄졌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연금 계좌 내 ETF 매매는 통계 작성 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증권사(LP) 물량과 합산돼 ‘금융투자’ 매수액으로 잡히기 때문에 연금 계좌 내 순매수 금액만 발라내서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 외에도 올 들어 은행권에서 2조 7,787억 원을 순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 중에는 개인들을 대상으로 판매한 신탁 상품 내 ETF 매수액도 포함된다.
자산운용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략 올 들어 개인들이 순매수한 ETF 금액이 7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며 “연말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IRP 및 연금저축 계좌 납입액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것까지 감안하면 최대 10조 원의 개인 순매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이한 점은 올 들어 순매수 상위 ETF가 대거 물갈이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개인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ETF는 코스피지수 하락률의 2배의 수익을 주는 KODEX 200선물인버스2X, 이른바 ‘곱버스’다. 순매수액이 3조 5,862억 원으로 압도적인 1위였다. 2등은 지수 하락률의 1배의 수익을 주는 KODEX 인버스(5,817억 원), 3등은 KODEX 코스닥150선물인버스(4,697억 원)이었다. 또 유가가 급락하자 KODEX WTI원유선물 ETF도 개인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지수에 베팅하는 ETF는 퇴조세를 보이는 대신 해외테마형 ETF가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중국 전기차 업체 투자하는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9,657억 원)에 1조 원 가까운 자금이 몰렸으며 글로벌 전기차 회사 및 소재 업체에 투자하는 TIGER 글로벌리튬&2차전지SOLACTIVE(3,776억 원)도 개인들이 많이 산 ETF로 나타났다.
또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도 ETF를 통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빅테크 10개 종목에 투자하는 TIGER 미국테크TOP10 ETF(3,219억 원)는 순매수 3위에 올랐으며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3,154억 원), TIGER 차이나항셍테크(2,560억 원)가 그 뒤를 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수익률이다. 국내 증시가 상반기까지 상승세를 보이면서 곱버스 ETF의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다. 대신 국내외 전기차 관련 테마와 미국 증시는 수익률이 고공 행진해 왔다. KODEX 200선물인버스 ETF는 연초 이후 -17.9% 빠진 반면 TIGER차이나전기차 ETF는 같은 기간 51.8% 뛰었다.
조병인 한국거래소 ETF시장 팀장은 “ETF는 일반 주식형 펀드와 달리 실시간으로 매매가 편리해 직접 투자를 선호하는 투자자들부터 각광받으며 급성장하고 있다”며 “올 들어서는 방향성 베팅보다는 장기 성장성을 보고 산업에 투자하는 ETF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변동성 장세가 확대되면서 개인투자자들이 개별 종목에 투자하기보다는 특정 산업군에 속하는 관련 기업을 묶어서 투자하는 ETF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묶어 뒀던 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연금 계좌 내에서 해외 ETF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보험, 중개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서 해외 ETF를 거래하면 매각 차익에 붙는 세금(15.4%)을 절세할 수 있다.
김남기 미래에셋자산운용 ETF 본부장은 “국내 증시는 횡보하는 반면 미국의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면서 스마트 투자자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국내 증시에 해외 ETF의 상장이 증가하면서 밤에 해외 주식 직구를 하는 번거로움 없이 해외에 투자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생긴 점도 이 같은 트렌드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