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개입'서 '자율 선택' 전환했지만..."갈라파고스 규제 여전"

[게임 셧다운제 10년만에 폐지]
게임업계 일단 환영 의사에도
일부 가정은 더많은 시간 제한
오히려 규제 더 강해질 가능성
"경쟁력 큰 도움 안될것" 지적

한 시민이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시간대 온라인 PC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도입 10년 만에 폐지된다. 대신 자녀와 부모가 게임 이용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게임 시간 선택제’로 관련 제도가 일원화될 예정이다. 셧다운제 폐지를 주장해온 게임 업계는 일단 환영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적으로 찾기 어려운 게임 시간 제한 조치가 여전히 유지되는 등 본질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교육부는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셧다운 제도 폐지 및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 이용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안에 청소년보호법을 개정해 셧다운제를 폐지하고 게임산업법에 규정돼 있는 게임 시간 선택제로 청소년 게임 시간 제한 제도를 일원화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셧다운제에서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 시간(자정~오전 6시)대 온라인 PC 게임 이용이 일률적으로 금지된다. 반면 게임 시간 선택제에서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 본인 또는 보호자가 원하는 시간대로 이용 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 청소년의 자기 결정권과 가정 내 교육권을 존중해 자율적 방식으로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 여가 문화가 정착되도록 지원하자는 취지다.


셧다운제는 청소년 게임 과몰입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지난 2011년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제도 도입 당시 6.5%였던 청소년 게임 과몰입 비율이 지난해 1.9%로 떨어지는 데 기여했지만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면서 실효성과 당위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청소년의 게임 이용 분야와 인터넷 서비스 이용 분야. /자료제공=여성가족부·문화체육관광부

청소년의 미디어 이용 분야가 모바일 게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으로 다양해지면서 온라인 PC 게임 이용만 규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청소년 9,19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넷 서비스 이용 조사를 보면 게임(59.2%, 중복 응답)보다는 대화하기(100%), 사진·동영상(82.8%), 음성·영상통화(68.6%)에 이용도가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유해 매체로 인식되는 콘텐츠가 더 이상 게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최근 발생한 ‘마인크래프트 논란’은 셧다운제 폐지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청소년층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초통령 게임’이라 불리던 마인크래프트는 셧다운제로 한국에서만 청소년 이용 불가 게임이 됐다. 운영사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계정 통합 시스템을 정비하면서 한국 청소년만을 위한 시스템 적용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지난 6월 마인크래프트 홈페이지에서 '한국에 있는 플레이어의 경우 마인크래프트 자바 에디션을 구매하고 플레이하려면 만 19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마인크래프트 홈페이지 캡처

정부의 셧다운제 폐지 결정에 게임 업계는 환영 의사를 밝혔지만 근본 원인인 ‘갈라파고스 규제’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게임 시간 선택제 역시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지 않은 규제라는 점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마인크래프트 논란이 보여주듯 여전히 글로벌 게임사들이 국내 청소년 대상 서비스를 포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윤재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게임 시간 선택제가 시행된 지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임은 이미 (관련) 시스템이 개발됐다”며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국내 게임사와 해외 게임사도 관련 조치를 큰 문제 없이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성유 여성가족부 청소년정책관이 25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셧다운제 폐지 및 청소년의 건강한 게임이용 환경 조성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셧다운제 폐지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계속되고 있다. 게임 시간 선택제는 기존 심야 6시간만 제한하던 셧다운제와 달리 각 가정 방침에 따라 더 많은 이용 시간 제한이 가능하다. 또 사각지대의 청소년을 위해 법정 대리인 외 교사나 사회복지사가 게임 시간 선택제를 신청할 수 있어 ‘청소년 권리 침해’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존 국가가 규제하던 영역을 가정으로 다시 돌린 셈”이라며 “가정 내에서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게임 업계 일각에서는 일부 청소년이 극단적인 게임 이용 시간 제한을 받아 오히려 청소년 이용자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게임 업계의 한 관계자는 “청소년 이용자는 당장의 매출보다는 장기적인 게임 생태계의 토대가 된다”며 “자녀가 게임을 장시간 즐기는 것을 환영하는 부모는 드문 만큼 일부 가정에서는 극단적인 이용 시간 제한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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