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시험제도는 공정을 가장한 거짓[책꽂이]

■불공정사회
이진우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근래 한국 정치의 화두는 단연 공정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눈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공정한 문제들 투성이다. 지난해 7월 실시된 '서울 청년 불평등 인식조사'에서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는 물음에 긍정적인 응답은 14.3%에 그쳤다. 10명 중 6명은 ‘우리 사회가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모두가 공정을 부르짖고 갈망하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 불공정이 팽배해 있음을 드러낸다.


책 '불공정사회'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공정한 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이진우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쓴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경험하고 고민해 온 불공정 문제를 정치철학자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최근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사안들을 중심으로 그것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 지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마이클 샌델 같은 정치철학자들의 사상을 동원해 사유하는 방식이다.


공정성 논란은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가장 극심하게 벌어진다. 자원을 평등하고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물건과 일자리가 부족할 수록 공정성 논란은 더욱더 커진다. 문제는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무한 경쟁에 초점을 맞추면 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없다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볼 때 시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한국의 취업 시장은 이런 의미에서 시장이 없는 경쟁이 지배하고 있다고 저자는 적고 있다.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는 시험제도를 통한 형식적 기회 균등이 공정을 가장한 거짓이라고 꼬집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에 많은 돈을 지출하며, 높은 사교육비 지출은 좋은 대학으로 진학할 확률을 높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한 입시제도의 변화 만으로는 교육 불평등을 줄이지 못한다는 논리다. 책은 '조국 사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수능 위주의 정시든 학생부종합전형이든 시험제도를 왜곡한 사회적 가치가 변하지 않는 한 교육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책은 공정의 본질을 묻는 9가지 질문으로 구성돼 있다. '합법적인 것은 반드시 정당한가' '능력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가' '부는 집중되어야 생산적인가' '경쟁은 효과적인 분배 방식인가' 등이다. 저자는 책에서 “불공정 징후가 농후한데 공정을 논하는 것은 위선적”이라며 “우리가 진정 공정사회를 원한다면, 우선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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