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정원장이 27일 국정원의 불법 사찰과 정치 개입 종식을 선언하면서 “산업 기술 유출, 사이버 해킹, 대테러 등 국익·안보·안전·민생에 기여하는 서비스 기관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국정원의 철저한 ‘정치 거리 두기’ 실천을 약속했다.
박 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과거 국정원의 불법 사찰과 정치 개입은 청와대의 부당한 지시는 물론 국정원 지휘 체계에 따라 조직적으로 실행됐다”며 “국가 정보기관을 ‘정권 보좌 기관’으로 오인하고, 정권 위에 국가와 국민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 것”이라고 사죄했다. 이날 박 원장의 대국민 사과는 국회가 지난달 24일 통과시킨 ‘국가정보기관의 불법 사찰성 정보 공개 및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 결의안’에 따른 조치다.
박 원장은 “정보기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한 잘못된 인식하에 정권에 비판적인 개인·단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사찰하고 탄압했다”며 “정·관계, 학계 인사 및 관련 단체, 그리고 그 가족과 단체 회원까지 사찰·탄압했다”고 설명했다. 또 “여기에 국정원 내 일부 국내 부서가 동원됐고, 국정원 서버와 분리된 별도의 컴퓨터를 이용해 자료를 작성해 보고했으며, 대북 심리 전단은 온라인 활동으로 여론을 왜곡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문화·예술·종교계 인사들의 동향도 전방위적으로 수집했고 누구보다도 자유로워야 할 이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현업에서 퇴출시키려고 압박했다”며 “반면 친정부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각계 인사와 단체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국정원이 단체와 기업의 금전 지원을 연결해주고, 특정 사업에는 직접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나아가 박 원장은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반대와 비방을 담은 강의 교재 등을 발간·배포해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며 “국정원을 또다시 정치로 끌어들이는 그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응해 정치 중립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해왔다”며 “문재인 정부 들어 정권의 부당한 지시도 없었고 국정원의 정치 개입, 불법 사찰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사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하고 국정원을 상대로 진행 중인 소송도 피해자 입장을 고려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며 “국회에서 특별법이 마련될 수 있도록 협조하고 마련된 특별법에 따른 재발 방지 조치도 성실히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정원감시네트워크 등 시민 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박 원장을 겨냥해 ‘떠밀리기식’ 사과라며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사과하고, 국회는 국정원 민간인 사찰과 공작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