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 시절에 언론 자유를 요구해 옥고를 치렀다가 42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이부영(79)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27일 거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움직임과 관련해 “이전 정부의 불행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기자협회·언론노조·방송기자연합회·한국PD연합회·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등 언론 현업 종사자 단체 5곳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주의 시스템인 언론의 마비로 권력의 횡포와 부패가 사회 곳곳을 파고들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주요 언론 단체들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시 위헌 심판 소송 제기 등 법적 조치도 예고했다.
이 이사장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조용래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심 전 최후진술에서 “(재심 사건이)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언론 자유 관련 논란에 좋은 시사점이 될 것”이라며 “집권 세력이 언론 자유를 위해 애쓴다고 하다가 이제는 언론중재법을 만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밀고 나가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만약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고집대로 밀고 나가 강행 처리하면 아마 국민의 거대한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언론중재법은 제대로 손질돼야 하고 여야 언론·시민단체 등이 숙려하는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무죄 선고 직후에도 취재진과 만나 여당의 성급한 움직임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언론중재법의 취지가 틀린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세세하게 갖춰야 할 조항이 많은데 집권 세력의 논리로 건너뛰어 부작용이 나타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는 데 몰두할 게 아니라 언론·사회단체들과 손질하는 시간적 여유를 갖자는 이야기”라며 “강행 처리할 경우 엄청난 저항에 부딪힐 우려가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시민단체까지 모두 수긍할 수 있는 내용으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국민의 반감 등 부작용만 초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무조건 강행보다는 한 번 더 깊이 생각하는 숙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이번 재판은 미래의 불법적 계엄령이 잘못됐다는 판례를 쌓는 과정이기도 하다”며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는 결국 극복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기자 출신인 이 이사장은 지난 1974년 박정희 정권 당시 유신 체제에 맞서 언론 자유를 수호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했다가 1975년 해직됐다. 특히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돼 영등포교도소에서 복역하던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됐다는 사실을 교도관에게 전달받아 김승훈 신부에게 전했다. 이 전 의원의 옥중 메모를 김 신부가 폭로한 것이 6월 항쟁 촉발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