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용]버려지는 소방관 방화복이 '힙'한 가방으로

이승우 119REO 대표 인터뷰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지난달 말 쯤이었던가요? 코로나19가 한창이긴 하지만 여의도 '더 현대'에 볼 일이 있어 잠시 들렀어요. 그런데 백화점 한 켠에 처음보는 의류 매장이 눈에 띄더라구요. 매장 앞엔 소방관님들이 입는 방화복이 전시돼 있었구요. 매장 앞에서 ‘기웃기웃'하는데 '셀러' 분이 오시더니 방화복을 업사이클링해서 가방 등 패션잡화를 만드는 '119REO'라는 브랜드라고 설명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급'검색을 해봤어요. 119REO는 소방관님들이 입다 수명이 다해 버려질 운명의 방화복을 가져다 가방 등을 만들고 회사 수익의 절반은 소방관님들에게 돌려주는 '사회적 기업'이더라구요. '방화복, 업사이클, 패션…여기에 소방관' <지구용>이랑 친근한 단어죠. 그래서 서둘러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승우 119REO 대표님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셨어요.



119REO 팝업스토어가 지난달 29일부터 8월 3일까지 서울 여의도 '더 현대'에서 열렸어요. 이승우 대표님이 마네킹과 함께 서 있네요. 처음 수거되는 방화복은 마네킹이 입고 있는 것처럼 검댕과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죠. 119REO는 이런 방화복을 수거해 세탁하고 재단해서 힙한 가방을 만들고 있어요. /119REO

건축가 꿈 대신 사회적 기업가로

이 대표님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셨어요. 어릴 적 꿈이었다고. 사람은 삶의 대부분을 건축물 안에서 보내는데 '건축을 통해서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었다고 해요. 건축을 하려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래서 '인액터스(Enactus)'라는 대학 동아리 활동을 시작하셨대요. 인액터스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사회적 기업 동아리에요. 이 곳에서 한강 어촌 살리기 활동을 하셨대요. 평창에 있는 물구비 마을 살리기 등에도 참여하셨다고. 이 대표님은 "열심히 했는데 다 망했어요. 그런 후에 1년 짜리 프로젝트로 소방관 처우개선 활동을 하기로 했죠. 소방관하면 드는 생각이 방화복이잖아요. 뭔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방화복은 아라미드라는 특수 섬유로 만들어져요. 내구성이 강하고 물과 불에도 강하죠. 그래서 매립하더라도 잘 썩지도 않아요. 워낙 강한 섬유다 보니 재단도 어려워요. 이 대표님은 "방화복인 만큼 잘 뜯어지지 않게 박음질도 굉장히 잘돼 있어요"라고 하셨어요. 방화복 세 벌 정도 뜯으면 가위를 새걸로 바꿔야 했대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무실에 가위 날을 가는 돌도 사다 놓고 작업을 하셨대요.



지난달 9일 열렸던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의 119REO 팝업스토어.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도 전시돼 있어요. /119REO

폐기되는 방화복 한 해 70톤…탄소배출 줄이기 위해 지역 자활센터 활용

소방관님들의 방화복은 대개 3년 정도 입으신데요. 두 벌 정도 받으시는데 옷 한 벌은 3년 동안 354번 정도 출동을 경험하신다고 해요. 아, 훈련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에요. 해마다 폐기되는 방화복은 70톤에 달하구요. 적은 양이 아니죠? 119REO에서 전량을 다 가져와서 업사이클링을 하지 못하지만 일부라도 가져와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고 있어요. 119REO의 제품이 많이 팔리면 우리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겠죠?



수거와 분해, 세탁은 지역 자활센터에서 맡아주세요. 자활센터에서는 22분이 일을 도와주신다고 해요. 지금은 그나마 수거가 수월해졌지만 처음에는 그러지 못했대요. 버려지는 방화복이라도 규정대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외부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여러 곳의 소방서, 지역소방본부와 MOU를 맺고 안정적으로 수거하고 있다고 하시네요.



지역 자활 센터에 맡기는 특별한 이유도 있었어요. 자활센터 작업자님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기도 하구요. 특히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전국의 폐기 예정 방화복을 서울로 모아오게 되면 거기에 따른 환경 오염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해요. 서울로 갖고 오면 부피가 10분의 1로 줄어든데요. 배송료는 물론이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어 이런 방식을 택하셨대요.



◇'한 땀 한 땀' 수제 가방…비싼가요?




119REO의 주요 가방 이름이 숫자로 된 것도 특징이에요. 리바이스, 뉴발란스 등도 숫자로 된 제품명이 있지만 119REO의 숫자는 좀 더 의미가 있어요. 119REO의 첫 백팩인 REO1181의 ‘1181’은 2016년 당시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하는 우리 국민의 숫자에요. 그 뒤에 나온 신상 백팩인 REO926은 2019년 기준 소방관 한 명당 국민 숫자에요. 200명이 줄었죠. 메신저 백인 REO300은 소방차의 출동 골든타임인 5분을 초 단위로 바꾼 것이구요, REO893은 2019년 소방관이 구한 사람 수에요. 89만3,000명인데 천 단위는 뺐다고 하시네요.



사실 제품이 싸진 않아요. 30만원이 넘는 제품도 있어요. 가장 비싼 라인업인 REO926 백팩은 32만원이에요. 그런데 제품을 만드는데 들이는 품을 생각하면 단순하게 비싸다고 할 수만 없을 것 같아요. 방화복의 수거에서 완제품이 나오는데 대개 한 달 정도 걸린데요. 방화복을 수거해서 깨끗하게 세탁하는 과정도 일반 섬유와는 다르게 손이 많이 가요. 다 수작업이에요. 색이 바랜 정도도 모두 달라서 획일적으로 대량 생산도 어렵구요.



방호복 하나에 REO926 백팩 하나만 생산할 수 있어요. 그래도 비싸다고 생각하는 고객들을 위해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어요. REO926 백팩은 100% 방화복으로 만드는데 비해 10~20% 정도 업사이클링한 제품도 있구요. 가격이 비싼 만큼 AS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고 하셨어요. 119REO 제품은 아라미드를 사용하는 만큼 수명도 반영구적이에요. 그런데 봉재가 뜯어지는 경우는 있다고. 그런 경우 직접 수선을 해주신데요. 가방에 사용한 후 남은 소재도 그냥 버리지 않아요. 지금은 다른 업사이클링 업체와 함께 팔찌를 만들고 있어요.


소방관을 기억해주세요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널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면 넌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야." 영화 코코에서 증조할아버지 헥터가 증손자 미구엘에게 했던 말이에요. 사실 우리가 아프거나 불이나거나 하는 큰 사고가 아니면 소방관님들 생각은 잘하지 못하자나요. 119REO는 방화복 업사이클링을 통해 우리 환경도 보호하지만 119REO는 우리 주변의 소방관님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커가고 있어요.



119REO의 메신저백 'REO300'. 소방차가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의 골든타임 5분을 초로 환산해 붙인 제품명이에요. /119REO


가방이 119REO의 핵심 제품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이 대표님은 "소방관이 왜 자꾸 잊혀질까? 위험하지 않으면 우리는 소방관님들을 떠올리지 않자나요.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늘 생각할 수 있고 우리 일상에 침투할 수 있게. 그럴려면 가방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옷은 매일 갈아입지만 가방은 늘 바꿔서 다니지 않으니까요" 이렇게 설명하셨어요.



수익의 절반을 소방관님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 방침이지만 아직은 수익이 많지 않아 지금껏 5,000만원 정도 기부하셨대요. 이런 기업들이 좀 더 잘 되면 우리 사회와 환경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될 텐데 말이죠. 그래도 지금은 많은 분들이 119REO를 알아봐 주시고 계시대요. 특히 올해는 전국 백화점에 팝업 스토어를 지속적으로 열면서 더 인지도가 상승하는 듯한 모습. 에디터도 여의도 ‘더 현대’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로 119REO를 알게됐구요. 다음 달 5일까지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본관에서도 가게를 운영하실 거애요. 그리고 대전 신세계백화점에서는 내달 23일까지 운영할 거구요.



토트백 REO893에 대해 설명하시는 이 대표님. REO893의 겉감은 방화복 소재, 안감은 항균 소재예요.

이 대표님은 "사실 기부를 많이 한다고 소방관님들의 처우가 확 바뀌거나 하지는 않죠. 오히려 소방관님들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일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 대표는 2014년 혈관육종암으로 돌아가신 김범석 소방관님 얘기를 꺼내셨어요. "김 소방관님은 유언으로 자신이 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소방관이었던 걸로 기억되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런 얘기를 잘 전달하는 게 우리 일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얘기를 마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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