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라는 시한폭탄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


유한책임회사(LLC)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법인의 이중과세가 당연시됐었다. 1977년 최초로 유한책임회사 법안을 통과시킨 곳이 미국 와이오밍주(州)다. 미국 연방국세청(IRS)은 유한책임회사를 인정하지 않고 10년을 허송세월했다. 연방국세청은 계속 법인세와 소득세를 함께 부과했다. 유한책임회사 제도는 1988년이 돼서야 정착했다. 비로소 법인세를 부과하지 않고 주주에게 분배된 이익에 대해서만 세금이 부과되기 시작한 것이다.


카우보이로 잘 알려진 와이오밍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업 친화적인 제도들을 많이 도입했다. 2021년 7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 분산자율조직(DAO)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 법률에 따라 와이오밍에서는 DAO가 유한책임회사로 인정을 받는다. DAO 개발자의 책임 범위도 유한책임회사의 법적 테두리로 한정됐다. 이후 ‘더 아메리칸 크립토페드 다오’가 미국 최초의 합법적인 DAO가 되었다.


신기술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미국의 가진 힘의 원천이다. 미국 규제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의 헤스터 피어스 커미셔너조차 토큰 면책 제안을 통해 코인 출시 후 3년을 기다렸다가 개발자의 책임을 면제해 주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 따른 가상자산사업자 신고 사례를 살펴보면 미국과는 거리가 있다. 거래소가 신고시한인 9월 24일까지 신고를 마쳐야 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은행이 거래소를 아예 만나려 하지 않는다. 법률로 정해진 실명확인계좌 발급 절차가 원천적으로 마비됐다.


문제가 생긴 이유는 간단하다. 은행이 국가로부터 실명확인계좌 발급 권한을 위임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래소에서 사고가 터졌을 때 자의적으로 계좌를 발급했다며 금융위원회가 그 책임을 몽땅 은행에 전가할 수 있다. 그래서 은행이 금융위원회에 면책을 요구한 모양인데 이게 거부됐다.


그럼에도 업비트가 8월 20일 최초로 거래소 신고를 마쳤다. 업비트는 정식 계약서 없이 약식인 ‘유지 확인서’로 신고했다. 9월 24일 전에라도 조건부로 신고가 수리될 수 있다. 면책이 약속된 게 아니므로 은행이 계좌 발급을 계속 거부하면 업비트의 신고는 철회된다. 최악의 경우 한국은 법적으로 법정화폐로 코인을 사고팔 수 있는 거래소를 모두 폐쇄한 세계 최초의 나라가 된다.


정부는 원화 거래가 중지되거든 코인마켓에서 거래하라고 한다. 주식을 사고팔지 못하고, 주식끼리 교환만 할 수 있는 기형적 증권거래소가 되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코인은 사실상 휴지쪼가리가 된다. 사정권에 든 코인은 얼마나 될까. 코인마켓캡에 올라온 코인만 조사해도 최소 118개, 시가총액 11조원원이 넘는다. 손실금액이 5,500억 원이라는 옵티머스 펀드, 1,000억 원이라는 머지포인트 사건과 비교하는 게 민망하다.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기 시작한 줄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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